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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외할머니 일본인이다

JBC(정병철) 2014. 1. 22.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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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 생부 친일 논란 이어 생모는 일본인

고영희 생모와 오사카서 친조모 간장 장사 

김정은 외가는 제주 한라 혈통

 

 

 

최근 북한 내에 국모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권력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모친 고영희<위 사진>다.

이전까지 북한의 국모로 칭해졌던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의 어머니였던 김정숙이었다.

고영희는 그동안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로만 알려졌을 뿐 신상 정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북한이 김정은 국모로 우상화에 서서히 열을 올리는 고영희.

그녀는 누구일까.                        오사카 쓰루하시=JBC 

 

 

쓰루하시역

 

고영희는 1952년 6월26일 일본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위치한 ‘이쿠노 코리아타운’ 부근의 쓰루하시(鶴橋)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쓰루하시 부근에 히라노(平野)운하를 건설할 때 끌려온 한국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른 곳이다.

오사카 중심주 니혼바시역에서 긴데쓰 나라행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쓰루하시 역<사진 위>이다.

이 역 주변에선 재일 한국인들이 김치, 한국식 밑반찬 등을 많이 팔아 일본인들은 이 역에 내리는 순간 김치와 마늘냄새가 코끝을 스친다고 한다.

고영희 출생 당시 이름은 ‘고희훈’이다.

일본 이름은 ‘다카다 히메(高田姬).

 

 

고경택 일가. 1973년 추정 사진

 

고영희는 1962년 10월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후 ‘고영자’로 이름을 바꿨다가 이름안에 ‘자(子)’를 쓰지 못하게 했던 북한 당국의 정책에 따라 고영희라는 이름으로 개명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영희 생부는 누구일까.

고영희 생부는 제주 출신 고경택으로 알렸지만 생부와 관련해선 논란이 많다.

일각에선 생부가 북송 교포 출신 고태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 고영희 오른쪽 고태문

 

일본 유도협회에서 발간한 고태문 이력 

 

고태문은 북한 유도의 창시자다.

‘북한유도’는 고태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북한 유도의 간판이었다.

고태문은 북으로 와서 평양체육단 유도 감독을 지냈다.

1m 86㎝의 장신인 고태문은 한때 일본에서 다이도잔 마타미치(大同山又道)라는 이름의 프로레슬러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태문은 당뇨로 고생하다가 1979년 사망했다.

그러나 고태문이 고영희 생부라는 것은 신빙성과 근거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가정보원은 “고영희 생부가 제주도 출신인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인 고경택(1913-1999)이 고영희의 아버지이며, ‘히로타(廣田) 재봉소’에서 일하다가 함경북도 명간군에 정착한 재일교포”라고 밝혔다.

 

 

고경택의 족보

 

고경택은 고영옥(高永玉, 1876년생)의 아들로 1913814일에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출생한후 16세 때인 1929년 가족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현재 제주시 봉개동에 고영옥의 묘는 있지만 그 아들 고경택은 시신을 찾을 수 없어 허묘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고경택이 일본군의 군복을 만드는 ‘히로타 군복공장’에서 일했으며 관리직까지 승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일 논란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배고프고 어려웠던 시절 일본에서 고경택이 먹고살기 위해 군복공장에서 일했던 것만으로 친일로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오사카 이쿠노 코리아타운에서 취재중인 필자 

 

 

임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집터가 사라졌지만 고영희는 산고정육점 주변에서 태어났다.

 

생부 논란에 이어 고영희 생모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이는 고경택의 여자 관계가 복잡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경택은 청주 한씨라는 여인을 첫 번째 부인으로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경택은 청주 한씨보다 두 살 많은 이맹인을 부인으로 뒀다.

나아가 고경택에게는 양명녀라는 여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양명녀가 이맹인으로 개명한 것인지, 고경택이 재혼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고영희가 누가 낳은 딸인지 역시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 한 교포가 고경택의 부인이 일본인이라고 밝혔다.

일본인이었던 고경택 부인이 '이맹인'으로 개명했는지 확인 되지 않고 있지만

교포의 증인에 따르면 일본인 부인은 고경택 모친과 함께 간장장사를 계속했다고 전했다.

일본 쓰루하시 코리아타운 인근에서 김치 장사를 하는 84살의 임모 할머니.

제주도가 고향인 임 할머니는 1930년대 일본 오사카로 건너왔다.

당시 제주도에서 온 고영희 가족과는 고향이 같아 각별한 친분이 있었는 것.

 

 

 

임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고영희 아버지는 1929년 즈음 모친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왔다.

임 할머니는 “일본에 정착한 고영희 친조모는 지금의 오사카 코리아 타운내에서 간장 장사를 했다”고 밝혔다.

“친조모는 가무와 장구를 기가막히게 잘 해서 저녁이면 그 장구와 노래소리가 코리아 타운내로 퍼졌다”고 회상했다.

고영희는 1962년, 아버지를 따라 북한으로 들어오게 된다.

고영희의 아버지가 입북을 택한 것은 당시 북한의 ‘재일교포의 귀환’ 프로젝트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 할머니는 “고영희 친조모는 북한으로 가지 않고 혼자서 간장 장사를 계속했다”고 회고했다.

임 할머니는 고영희 생모도 같이 따라 북한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고영희 친조모와 모친이 함께 지냈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말했다.

 

 

 

고영희 친조모와 모친은 얼굴이 참 이뻤다는 게 임 할머니의 회상이다.

고영희가 타고난 끼를 발휘하며 1971년, 만수대예술단<위 사진>에 들어가 무용단원으로 활동했고 얼굴이 이뻤던 것도 친조모와 모친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임 할머니의 설명이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몰래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던 성혜림(장남 김정남의 어머니)이 있었지만, 고영희가 김정일 위원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빼어난 외모도 한 몫했다.

고영희는 김정일 위원장 4명의 아내(김영숙, 성혜림, 고영희, 김옥)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아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영희는 김정일과 사이에 정철, 정은, 일순 등 2남1녀를 낳았다.

그녀는 2004년 8월 프랑스에서 유선암 치료를 받고 귀국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나이 52세였다.

북한은 최근 ‘백두혈통’을 엄청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의 입장에선 백투혈통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정은의 생모에 대한 언급은 한계가 있다.

 

 

인민대회장에서 박수치는 고영희

 

고영희의 경우 출신과 직업, 결혼 관계에까지 우상화 선전에 불리한 요건들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이번 기록영화에서 고영희의 이름은 물론 나이, 출신지 등 개인의 이력에 대해서는 일체 밝히지 않고 있다.

제2의 국모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고영희.

소위 북한이 장성택 처형 이후 ‘백두산 혈통’을 내세우며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김정은의 외가(外家)가 골수 친일파(親日派) 집안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생모는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제기됐다.

고영희의 우상화를 둘러싼 김정은의 최대 아킬레스건만은 틀림없다.

북한이 고영희 우상화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김정은에게는 치명타다.

이미 김정은은 백두 반쪽 혈통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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