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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길남 미스터리 추적 제2편

JBC(정병철) 2015. 2. 19.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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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증과 기자증에 숨겨진 비밀

  "학생증은 63학번, 기자증은 64학번"

 

나는 사람을 만나면 혈연(血緣), 학연(學緣), 지연(地緣)을 묻거나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유별나게 한국 사회가 이 3緣에 집착하면서 크고 작은 커넥션을 맺은 후 일종의 마피아를 형성시켰기 때문이다.

좀 외람된 표현이지만, 나는 현역 기자 시절 더럽거나 부정스러운 것은 아주 세차게 조지기로 악명 높았다. 그런데 간혹 세게 조진 기사가 신문 가판에 깔리면 이를 본 다른 기관 및 단체 관계자가 찾아와서 배달판 기사에선 빼달라고 읖조리 하곤 했었다. 이를 거절하면 3緣까지 총동원해서 곤란함을 겪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노길남 미스터리를 이야기 하면서 이 3緣을 생뚱맞게 먼저 끄집어낸 것은 이것의 병폐를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무리 세탁을 해도 세탁되지 않는 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바로 ‘핏줄’과 ‘학연’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자 소송에 휘말린 한 장관은 법정서 창피만 당했다. 당시 판사는 재판을 하나 마나 결과가 이미 드러났다고 봤다. 왜냐면 아버지와 딸이 한마디로 ‘붕어빵’이었기 때문이다. ‘씨도둑’이 없다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그래서 씨는 절대로 세탁하거나 속일 수 없다.

또 ‘학연’이다. 솔직히 혈연과 지연은 세탁 후 상대를 속일 수 있다. 그러나 학연만큼은 절대로 되지 않는다. 동시에 학교를 다녔던 선·후배 동기들이 있기 때문에 속이면 곧 탄로난다.

아무리 신분 세탁을 했을지언정, 언젠가는 발각되는 게 학연이다. 노무현 정권 스캔들의 주인공 신정아가 그 캐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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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난 17일 글을 통해 노길남 출생의혹을 제기했다. 노길남의 출생은 물론 학교 입학년도에서도 자신이 말했던 것과 의구심을 느끼게 할만한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음을 지적했다.

사실 이러한 의혹은 노길남이가 먼저 해명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제기되었던 의혹에 대해 수십차레에 걸쳐 밝혀 줄 것을 촉구했었지만 외면했다. 지금 시각은 19일 설, 새벽이다. 내가 설 새벽에 이딴 글을 적고 있다는 것도 한심스럽지만 나는 노길남이 간첩인지, 아닌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의혹이 드러날 때 까지 추적할 거다. 한마디로 갈데까지 가보자.

공적인 활동을 하는 자는 투명한 신분이 생명이요 도덕성과 직결된다. 이번 새 총리로 임명된 이완구 총리를 보자. 그가 아무리 투명한 인생을 살았다지만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만큼 털어 서 먼지가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노길남의 경우는 다르다.

노길남을 보자. 그는 남북한 평화통일주의임을 자처했다. 그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민주화 운동협의회 총무, 범민족대회 미주대표, 2005년 6·15 공동위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도 역임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그의 출생과 학교, 그리고 그가 살았던 전반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하고, 특히 투명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대한민국 사회를 향해 막말을 하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인물로 드러난다면 그는 남북한을 동시에 조롱하고 통일 운동을 했던 모두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노길남을 둘러싸고 제기됐던 의혹들의 껍질을 벗기는 이유와 까닭이기도 한 것이다.

연대 교정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 노길남

# 학번 의혹

 종북 간첩 노길남은 언제 대학을 입학했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서 발간된 한인인명백과 사전과 또 그가 각종 인터뷰서 밝힌 바에 따르면 1964년 연세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가 소지하고 있는 학생증과 신분증명서(기자증)을 보면 대학 입학연도와 학번이 다르다. 과연 그는 몇 학번인가.

이를 확인 하기 위해 서울 D 고등학교 측에 “노길남이 언제 입학을 했으며, 졸업연도가 언제였는지” 문의를 했었다. D 고교 측은 “15회 졸업생 노길남은 1960년 입학했으며, 1963년 졸업했다”고 밝혔다.

노길남이 1963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면, 63년 연세대를 입학하여야 했다. 왜 1년 뒤 64년 입학했을까. 사실 이 부분은 노길남이 진작 해명해야만 했지만 어느 인터뷰에서든, 사적 자리에서도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뒤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없다.

추측컨대 그가 재수를 했었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재수를 해서 연세대를 입학했다고 밝히면 그만이다. 혹시 말을 하지 못할 특별한 사연이 있기 때문인가. 미로운 것은 64학번이라고 밝힌 노길남이 63학번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학생증은 63학번, 기자증은 64학번

연세대가 1965년 3월 1일 발급해 준 학생증에 따르면 노길남은 1963년 입학했다. 왜 그런가. 이 학생증을 역으로 계산하면 금방 알 수 있다.

1965년 3월 31일 발간된 학생증에는 ‘이이는 본 대학 정법대학 三(3)년임을 증명함’이라고 적혀 있다. 노길남이 64학번이면 65년에는 대학 2학년이 맞다. 그런데 학생증은 왜 65년 3학년으로 기재되어 있는가.

그런데 더 의혹스러운 것은 신분증명서(이하 기자증)는 64학번으로 추정된다. 연세대 영자신문사가 1970년 3월 1일 노길남에게 발급 해준 제 8기 기자증을 발급해줬다.

연세대 측에 노길남 졸업연도를 확인 한 결과 1971년이다. 노길남도 1971년 졸업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1970년은 4학년 생이다.

#학생증이 맞는가. 기자증이 맞는가

노길남은 몇 학번인가. 기자증만을 놓고 볼때는 64학번이다. 또 학생증은 63학번. 어느 게 진짜 학번인가.

노길남 학생과 신분증을 비교해볼 때 이해 안가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965년 3월 1일 발급된 학생증 유효기간이 1966년 3월 31일까지다. 학생증이 1965년 3월 1일 발급된 거라면 유효기간이 66년 2월 28일까지다. 학생증을 분실할 경우 재발급은 해주지만 1년 1개월 짜리 학생증은 애초부터 없다. 유효기간이 3월 31일까지라면 4월 부터 신학기기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기자증은 주소와 이름 등이 한글로 적혀 있다. 반면 학생증은 한문이다. 아무리 한글과 한문 글의 모형이 다르지만 필체에서도 상당히 차이가 난다. 기자증 필체는 펜으로 꾸욱 눌러쓴 정체형 글이지만, 학생증 한문은 필기체형에 가깝다. ▲4학년에 편집국장을 역임한 것도 의아스럽다. 노길남은 “1970년 Annals 8기 편집국장”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연대 연세춘추(신문사) 규정을 보면 편집국장 임기가 한 학기로 규정 되어 있다. 물론 기자 신분증은 1년 짜리 편집국장이다. 기자의 임기는 편집국장 재임시간 한 학기 포함해서 5학기 즉 2년 반이다. 이를 볼때 노길남이 편집국장을 역임했었다면 3학년 1학기 즉, 69년 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기자증은 그가 대학교 4학년 때(70년) 편집국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길남은 시위 전력이 있었다. 당시 대학신문은 주간 교수가 다 검열해서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글을 게재할 수 없도록 했었다. 특히 노길남은 경찰 수배를 받아왔고, 64년 6·3시위 후 65년말 군대에 입대했다. 연대 학보사가 그런 자를 편집국장으로 앉혔을까. ▲신분증명서와 학생증은 뭔가 모르게 많이 허접하다. 학생증에는 대학총장 명이 관인이 찍혀 있지만, 기자증에는 없다.

신기한 것은 노길남 나이가 일흔한살이다. 46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기자증과 학생증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 그는 왜 유독 연세대를 졸업한 사실을 강조하고, 학생증과 기자증까지 자신을 소개하는 영상에 띄웠을까. 설마 그 영상에 스쳐지나가는 학생증과 기자증을 본지가 비교 분석했을까라는, 그 안이함이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있는 셈이다.

 

#언제 군대를 갔나

학생증과 기자증을 비교해 보면 또 다른 의문점도 던져 주고 있다. 언제 군대를 갔느냐다. 노길남은 “대학교 2학년을 마친 1965년 말 군대를 갔다”고 밝혔다. 그 기자증은 노길남이 64년 말 입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의 학생증은 1965년 대학 3학년이다. 따라서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종북 간첩 노길남은 참으로 아리송한 인물이다. 학생증을 까면 1965년 2학년 때 군대를 갔다. 그러면 기자증이 가짜다. 반면 기자증대로 65년 3학년에 군대를 갔다. 그러면 학생증이 가짜다.

연세대를 졸업했다고 밝혔지만 대학 학번조차 불분명한 노길남. 이후 그의 인생을 학생증으로 맞췄는지, 혹은 기자증에 맞췄는지. 학번이 불분명하다보디 그의 향후 이력은 짜맞추기, 짜잡기 의혹 투성이다.

복잡하고 아리송한 노길남은 군대까지 의문점 투성이다. 육군으로 입대 한 노길남. 그가 미군 부대근무병 카츄사로 보직 변경이 되었다. <다음호는 노길남 군대 의혹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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