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산산히 부서진 해운대여!

JBC(정병철) 2015. 2. 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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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해운대 백사장 모래

 

어릴 때 놀이터는 해운대 해수욕장이었다. 해운대 아이들 중,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면 햇빛에 그을려진 피부로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여름이면 해운대 바닷물이 곧 ‘욕조’다. 바닷속에 몸을 풍덩 던지면 얼굴과 몸을 굳이 씻지 않아도 세면 끝이다. 해운대 백사장 모래는 ‘이불’이다. 물속에서 나온 후 몸을 모래속에 파묻어면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동백섬과 미포 인근서 조개도 줍고, 파도에 떠내려 온 미역을 주워서 그 줄기를 먹곤 했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에게 해운대는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다.

해운대가 개발되어 많이 바뀌어도 그 해운대의 짠 파도내음과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백사장은 여전히 고향 떠난 객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 혹시라도 방송을 통해 해운대가 비쳐지면 TV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나는 이번 설 명절날, 17년 만에 고향 해운대를 갔었다.

그런데 해운대를 간 순간부터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해운대인지, 아니면 다른 도심 개발 현장에 와 있는지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헷갈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성 탓에 해안가에서도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사진>

이유는 해운대 모래 유실이 심해 430억원 예산을 들여 해운대 백사장을 다 파헤친 후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는 모래 유실이 심해서 이미 매년이면 수십억원 어치 모래를 사와서 백사장에 갖다 부었다.

이미 해운대 백사장 모래는 ‘토종 모래’가 아니다. 해운대 바다는 백사장의 길이가 1.5㎞이고 폭이 30-50m다. 해운대의 모래는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졌다.

그래서 파도가 훑고 지나갈 때 ‘사르르르’하는 소리가 들린다. ‘택리지’를 지은 조선의 학자 이중환은 이를 ‘우는 모래(鳴砂)’라고 했다.

해운대 백사장 모래 특징은 몸에 닿으면 잘 털어지지 않는 진득한 게 아니다. 손으로 털면 바람처럼 날아가는 게 해운대 백사장 모래다.

관절과 허리통증으로 고생하셨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해운대 모래에 파묻혀서 미역국을 한그릇 드시면 그게 만병통치약이었다. 그 모래 찜질은 각종 피부병도 낫게 했다.

그런데 그 족보없는 모래가,진흙같이 부드러운 모래가 해운대 백사장에 채워지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부산 환경단체니, 지역 지식인들, 언론까지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치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가 된 듯 침묵하고 있다.

해운대 공사를 진행 중인 시행사측은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를 갖다 붓는 공사를 끝내면 해운대가 ‘명품해수욕장’으로 거듭난다”고 떠든다. 이번에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한 공사비용이 무려 430억원이다.

그래서라도 사라지는 백사장을 지키겠다는 의도야 좋지만 이미 해운대의 고유성은 사라져 버렸다. 해운대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모르는바가 아니다. 해운대 자연이 모두 사라진 후 명품 해수욕장으로 거듭난들, 그것이 해운대인가. 껍질만 해운대일 뿐이다.

해운대 백사장 모래유실의 주요 요인이 있다. 그것은 해운대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 호화스런 고층 아파트와 리조트 빌딩 때문이다. 해풍이 해운대 고층 빌딩 벽면에 맞부딪히면서 반사되어 해풍의 역소용돌이가 현상을 일으켜 모래를 공중으로 유실시키고 있다.

역소용돌이 현상으로 유실되는 모래는 막을수가 없다. 해풍을 타고 모래가 사라지는 것을 무슨 수로 막겠다는 말인가. 과거 100m에 달했던 해운대백사장의 폭이 지금은 30m밖에 되지 않는게 그 이유다.

지금도 매년 모래를 수천 톤 부어 넣어야지만 해수욕장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리조트개발이 완료되면 강한 역풍에 의해 모래가 급격하게 유실되어 해운대해수욕장은 백사장 유실이라는 결정적인 환경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와 난개발 등으로 백사장, 사구, 호안 등이 훼손 또는 변형되는 현상. 기상이변과 무분별한 인공구조물 개발로 해안선 훼손이 심화되면서 각종 재해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인공구조물 건설에 따른 해수흐름의 변화와 특히 해안가 인근에 해안도로나 건물을 환경적 고려 없이 만드는 것이 모래 유실을 심화시켰다.

바다를 보고 자란 나는 굳이 학술적 문제로 접근안해도 왜 그런지 안다. 파도의 성질이다. 그 파도의 성질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바다는 잔잔한 호수같은 물길이다. 그러나 외부 공격을 받으면 파도는 성난 사자처럼 덮친다.

그리고 태풍이라도 올때면 파도는 백사장을 끝까지 혹은 항구 끝까지 온 후 모래를 끌어내서 갔다가 다시 모래를 밀고 온다. 일종의 강한 밀물 썰물 현상이다.

그런데 수천년동안 그 자유롭게 해운대를 오가면서 놀았던 파도가 어느날 개발로 빌딩이 들어서면서 탈출구가 막혀버렸다. 그 파도는 오갈 곳이 없다. 길을 잃어버렸다. 해운대 백사장 방향으로 좁혀 올 수 밖에 없다. 해운대 고층 빌딩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백사장 모래는 줄어든다.

그런데도 부산시와 해운대는 시민세금으로 매년 반복적으로 유실된 만큼의 모래를 퍼붓다.

나는 이런 어리석음에 반문한다. 더 늦기 전에 해운대를 지켜야 한다는 명제만큼은 단호하다. 이러다간 끝내 해운대의 아름다운 자연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 해운대가 사라질 것 같은 같다고 생각하면 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하디. 때론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해운대 파괴를 일컬어 발전이라고 찬양하는 문화의 모순 속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환경 보존과 발전은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두 문제는 철저히 융합되고 결합돼 있어야 한다.

개발이라는 개념에는 이렇듯 ‘파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해운대 파괴의 경고를 도외시하면, 우리의 미래도 동시에 파괴된다.

이젠 해운대가 개발의 대상이 되어선 아니된다. 해운대 주변을 개발해서 신천지를 만들어한다는 그 개발 논리에 갇혀 있다면 해운대의 자연은 조각조각 파편이 될 것이다.

나는 해운대 대재앙이 느껴지곤 한다. 신이 준 해운대 그 자연을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해운대는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자연선물이다. 인간은 그 신이 준 자연을 파괴했다.

그 노여움은 영화 <해운대>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해운대를 들이 삼킬거다. 해운대 개발에는 건축학자와 많은 지질 해양 학자들이 조언을 했을 것이다.

태풍이 세게 불어도 견딜수 있는 공사기법, 파도가 덮쳐도 견딜수 있는 구조물. 그것은 이론일 뿐이다. 그들은 그 태풍의 파괴를 제대로 본 적 있는가. 지구온난화는 더욱 강한 태풍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 태풍은 성난 파도를 만들어 자연을 파괴한 자를 덮칠 것이다.

나의 상상력이 해운대를 파괴시키는자의 반감이 아니다. 이런 소릴 하면 ‘미친놈’소리 듣기 딱 알맞다. 정말이지 그런 대재앙이 ‘어리석고 쓸데없는 생각’이길 바랄 뿐이다.

해운대를 죽이고, 밟고, 찢어놓은 후 이제 와서 명품해수욕장을 만들어 본들, 그것은 가짜해운대, 즉, 이미테이션 해운대 일 뿐일게다.

인간은 자연의 소유자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을 잠시 빌려 쓰는 존재다. 해운대는 한국인 자연의 원천이다. 해운대 바다와 백사장 그곳은 분리 될 수 없다. 모두가 소중하다. 그럴진대 어찌 백사장 모래 한움큼이라도 어찌 함부로 파헤칠 수 있는가. 백사장 모래와 파도소리, 바다는 함께 어우러진 하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쇠퇴와 소멸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칠 때쯤 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땐 이미 늦었다.”

우리는 이미 해운대 바다를 파편 내어 버렸다.

해운대 바다뒤, 호화스런 빌딩의 불빛은 해운대의 슬픔처럼 보였다. 

나만 그것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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