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영화제 전야제' 착각
출처=MK스포츠
19일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을 보면서 도대체 아시안게임이 왜 열리고 누가 주인공인지 순간, 착각이 들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 여러 나라의 우호와 세계평화를 촉진할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스포츠대회가 아시안 게임이다.
인천에서 열린 제 17회 아시안게임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런데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을 보면서 마치 '인천국제영화제 전야제'를 보는 것 같았다. 개막식은 개최국의 상징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큰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LED바와 IT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영상 등 화려한 볼거리들이 중심이 돼 장관을 연출한 거까지 좋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지난 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 성화봉송을 했던 필자는 그 후 90년 중국베이징 아시안게임부터 지난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렸던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취재현장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88서울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6년 북경올림픽때에는 현장에 있으면서 대회 개막식과 경기를 지켜봤다.
취재현장을 지키면서 보아온 것은 아시아게임이든, 올림픽이든 개막식 무대의 주인공은 스포츠 선수였다. 왜냐하면, 이들이 펼치는 대결 향연에 지구촌 사람들이 웃고 울기 때문이다. 이번 개막식은 한류스타에 의존하다보니 ‘아시아 최대의 스포츠 잔치’라는 본질을 잊은 듯했다.
개회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른바 한류 스타들과 인기 아이돌 그룹을 활용한 컨텐츠에만 집중한 모습이 역력했다. 스포츠인의 축제인지, 한류 축제인지 헷갈릴 정도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사실상 들러리로 세웠는데, 대한체육회가 이를 지적 했는지 알 수 없다.
이날 사전행사에서는 아이돌 그룹 EXO가 축하공연을 펼쳤고, 배우 장동건과 김수현은 개회식 본 공연에 함께했다. 또 홍보대사 JYJ의 공연, 영화배우 이영애 씨의 마지막 성화 점호, 그리고 가수 싸이(PSY)의 피날레 공연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스포츠와는 무관한 스타들이 중심이 됐다.
특히 개회식의 하이라이트인 성화 점화 장면에서 정점을 찍었다. 대한민국을 빛낸 스포츠스타들인 이승엽과 박인비, 이규혁, 박찬숙, 이형택이 차례로 건네받은 성화는 마지막으로 영화배우 이영애에게 전달됐다.
이영애는 역대 아시안게임 개회식 최초로 마지막으로 성화를 점화한 비스포츠인이 됐다. 나는 곰곰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영애가 왜 최종점화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나눔과 봉사를 통해 아시아의 화합에 기여한 인물”이었다고.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역대 16회까지 열렸던 아시안게임에서 사람이 직접 나선 경우 비스포츠인이 성화 최종점화자로 선정된 사례는 없었다. 국제대회 성화 점화자는 대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스포츠 스타가 맡는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는 육상 스타 장재근과 박미선이 나섰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는 남북 화합의 뜻을 담아 부산 출신 유도 스타 하형주와 북한의 유도 영웅 계순희가 최종 점화했다. 하계올림픽에서도 전무했다. 동계올림픽에서 단 세 차례 있었을 뿐이다. 이 가운데서도 연예인은 없었다. 대한민국이 그것을 바꾸었다.
96년 애틀란트 올림픽에선 오랜세월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서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인 무라마드 알리(아래 사진)가 성화 최종 점화를 허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던졌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왜 그런 명장면을 볼 수 없을까. 지금은 활동도 하지 않은 이영애라는 한류스타에게 성화 최종 점화를 맡겼을까.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언론은 화려한 성화 점화였다고 떠들고 있다. LED바와 IT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영상만 화려했지 뭐가 화려했는지 정말 개뿔 뜯어 먹는 소리다.
아시안게임을 누가 인천국제영화제로 만들었을까. 총연출을 맡은이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영화 감독으로서도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난 임권택씨였다. 여기에 장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감독들이 구상한 개막식, 그러니 한류 프레임에 갇힌 채 연출을 하다 보니 그들의 발상과 창의력은 결국 거기까지였던 거 같다.
2년 전 세계를 광분시켰던 싸이 ‘강남스타일’. 여전히 개막식 메인 무대에 싸이를 올려 말춤을 추게 한 연출. 그것을 보는 순간, 어깨는 들썩거렸지만 개막식 정점에 실망의 마침표를 찍은 느낌이다.
86년 이후 아시안게임 개막식을 보아온 필자에게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은 역대 최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대회 폐막식은 10월4일 열린다. 폐막식도 보나마나 한류공연장이 될 같다. 폐막식에선 아시안게임 이념인 우호와 세계평화를 녹인 것을 볼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아서 걱정과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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