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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재팬

위안부 혼네와 위안부 타테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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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은 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 여당 간부와 만난 자리에서 군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에 신중론을 폈다고 보도했다.

우리 외교 당국자가 김칫국 입장을 자의적으로 밝혔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지난 2일 정상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베가 이틀 만에 말 바꾸기를 했다. 나는 아베가 곧바로 말 바꾸기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베의 이런 말 바꾸기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5일 한국이 또 아베에게 당했다는 식으로 발끈한 보도를 내놓고 있다.

지난 2일 정상회담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 출처=포커스뉴스

나는 지난 2일 오후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아베와 일본을 너무 모른다. 위안부 문제가 조기 타결되면 내가 절필을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일본인의 속성에 대해 하나 하나 예를 들면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선 "일본이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절필까지 운운했다. 다행히 그래도, 절필만은 안해도 될 거 같다.

나는 일본과 외교전을 펼치는 당국자들을 볼때, 일본인 속성을 '무시' 내지 '외면'한 체 우리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두번 한 게 아니다. 외교가 자국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솔직히, 만약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진작 해결하고자 했다면 지난 70년 동안 한일 간 화약고로 그대로 남겨뒀을까.

http://www.focus.kr/view.php?key=2015110300140159541

내가 볼 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의 기본 원칙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보수 우익의 논리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문제는 그런데 왜 일본이 이 문제에 대해 협의를 계속하는가.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착각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협의만 할 따름이지 해결내지 결과도출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이 '협의'에 응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해석한다. 그야말로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고,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억측의 연장 선상이다.

 일본 국회서 연설하는 아베 총리. 출처=포커스뉴스

나는 지난 15년 동안 수없이 일본을 오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지에서 일하는 아주 센 일본 놈들과 친분을 맺어왔다. 내가 감히 일본이 위안부와 역사 문제 등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 것은 지난 15년 동안 이들과 교류를 해오면서느낀 결과물이다. 말하자면  수억원의 수업료를 낸 후 깨달은 교훈이다.

내가 만난 일본인이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니지만, 일본인과의 대화를 할 때면 속이 터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인은 '좋고', '싫음'이 명확하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알 길이 없다. 나는 왜 일본인들이 그렇게 이 다른지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일본이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고 밝혔다고 보도하는 방송

일본어에 혼네(本音)’타테마에(建前)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은 자신의 속마음을 그냥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나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어화되는 분위기를 고려한 포장언어와 상당 부분 언어화되지 않기도 하는 본심이란 두개의 코드가 존재한다.

이렇듯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 속내의 기호가 혼네이고, 그것을 감싸고 있으며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한 보호막 혹은 외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타테마에인 것이다. 때문에 흔히들, ‘혼네는 속마음을 타테마에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말을 뜻한다.

고노가 일본군 위안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한 방송 자막

또 일본은 내부의 관계, ‘외부의 관계냐를 따진다. 내부의 관계는 가족이나 친구 등이

, 거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외부의 관계다. 내부의 관계에게는 본심을 드러낸다. 어쩜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일본인이 마치 거짓말을 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상대의 본심을 얻으려면 내부로 들어가서 내부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아무리 친하더라도 외국인에게 그것을 허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은 한국인의 생각과 다른 요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할 때면 솔직함이 좋다. 한번 따져보자. 일본인은 솔직함과 신뢰성을 제일 덕목으로 본다.

그런데 이 덕목이 어패가 있는 게 속마음을 숨기는 게 일본인인데 여기서 어떻게 솔직함과 신뢰감이 형성되겠는가. 어쩜 신뢰감과 솔직함도 본심이 아닌 타테마에아닐까 싶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한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거나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만나서 속마음을 드러내는 대화를 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위안부 소녀상.출처=포커스뉴스

그러나 이런 저런 대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진실성이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성을 놓고 혼네’ ‘타테마에저울질 하는 민족은 일본인이다.

진실성 있는 대화를 나누면 상대의 마음도 진실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일본인과 만남에서 나는 진실성 있는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의사일 뿐이라고 말할 때는 허탈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의 '겉심'과 '본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 조기에 해결하자.

아 그럽시다.

한국과 일본이 지난 2일 양국 정상 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조기 해결하자고 협의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심'이다. 제발 이것이 '본심'인 거 마냥, 착각 말자.

일본인 개개인을 만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쩜 그럴수가 있어”라면서 분개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인의 그 분개에 대해 "일본인도 위안부 아픔에 동참했다"고 해석한다. 다시말하지만 그 반응 그렇습니까라는 '동의어'다.

당신의 주장에 대한 '합의어'가 아니다. 그냥 당신이 말한 위안부 실상에 대해 알아들었다는 거다. 그게 일본이다. 그러니 김칫국 해석은 김칫국 마시고 속 차리라는 나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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