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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동경 납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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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납치때 부산사람이 풀어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DJ). 김 전대통령은 2009년 8월18일 작고했다. 4년이 흘렀다. DJ가 작고하기 전 마지막 만난 기자가 누굴까. 뜻밖에도 일본 외신기자였다. 다치가와 마사키 일본 일간현대 전 외신부장(66)이었다. 다치가와 부장은 2009년 6월12일 서울 동교동에서 DJ를 만났다.

DJ는 이 자리에서 1973년 8월 일본 도쿄납치 사건을 비롯 자신의 정치역정에 대해 밝혔다. 그로부터 70일이 지난 8월 18일 DJ는 서거했다.

다치가와 부장은 이승에서 DJ와 마지막 인터뷰한 외신기자로 기록됐다. DJ는 다치가와 부장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겼을까. 다치가와 부장 취재수첩에 고스란히 적힌 DJ의 이승 마지막 인터뷰를 옮겼다.

 

   오른쪽이 다치가와 전 외신부장

1.사망 70일전 인터뷰

다치가와 부장은 “난 DJ 동경납치 사건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DJ가 그 사건을 먼저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동경 납치사건은 DJ가 살아생전 결코 잊지 않았던 사건이었음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DJ가 밝힌 납치 사건은 다음과 같다. "나를 납치한 사람들이 천으로 눈을 가렸다. 발에는 큰 돌을 올려 함께 묶었다. 나를 바다에 던져 수장시켜려 했던 것 같다. 난 죽기 싫었다.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살려달라고 절규하듯 기도했다. 그 말이 끝나자 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DJ는 이 말을 할 때 거침이 없었다. 마치 연단에서 군중을 향해 정치연설을 하는 모습 같았다"고 전했다.

DJ의 증언은 이어졌다. "그 때 배에는 여러명이 탔던 것 같다. 그 중 한 사람이 기억난다. 그는 포승줄에 묶여 있던 나의 손발을 풀어주면서 속삭이듯, '나는 부산 사람입니다. 71년 대선에서 당신을 투표했습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눈이 가려진 채 배타고 부산 앞바다까지 와서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게 DJ가 밝힌 납치 당시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다치가와 부장은 DJ는 재임시 펼쳤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밝혔다. DJ는 "난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한 관계를 재정립했다. 지금 남북한이 대화가 단절됐는데 대화를 계속 하고 햇볕정책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DJ와 38년을 함께 했다.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이제 물을 수가 없게 돼 버렸다”고 말했다.

 

                풀려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자들 질문에 일문일답

2. DJ와의 인연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었길래 다치가와 부장은 DJ를 이승에서 마지막 인터뷰한 외신기자가 됐을까. 그가 DJ를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가을. DJ가 일본 도쿄에서 유신선포 소식을 접하고 유신 반대 성명을 발표하던 날이다. 그는 DJ를 인터뷰했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덜 알려진 정치인이어서 지면에 반영되지 못했다.

그런데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에서 'DJ납치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사건은 한·일 외교 문제로 비화됐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에서 DJ를 납치해 한국으로 이송한 것은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DJ는 8월 13일 서울에 나타났다. 그도 서울로 날아왔다. 동교동 자택에서 피랍 기자회견을 하는 DJ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동교동을 드나들며 DJ와 함께 측근들도 알게 됐다”고 했다. 그후부터 그는 동교동계의 한 식구나 다름 없었다.

그는 DJ가 82년 미국에 망명왔을 때 DJ와 여행도 많이 다녔다. LA와 보스턴 등 미국 도시를 돌았다. 또 필리핀 등도 함께 갔었다. 그는 “DJ는 여행을 할 때도 인권과 한국민주주의, 그리고 일본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DJ는 83년 미국에서 재미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세웠다. 85년 DJ가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그는 “침대를 옮겨주는 등 이사를 도왔다”고 했다. 또 DJ가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 그의 메모와 육성 테이프를 일본과 미국 의회에 전달하는 등 한국 민주화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적으로 도왔다.

 

 

3. 위스키 즐겨마셔

그는 DJ의 취미와 식생활, 습관도 잘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DJ는 술은 마시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다르다. “DJ는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고, 위스키를 즐겨 마셨다"고 했다. 위스키는 스트레이트 잔(25㎖)으로 한번에 들이켰다고 했다. 위스키를 마셨지만 취한 DJ는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또 DJ는 "달변가였고, 눈물이 많고, 한없이 약한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DJ는 TV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도 양육강식에 의해 잡혀 먹는 동물을 보면서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고 했다.

DJ는 굉장한 대식가이셨다고 했다.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시키면 곱배기는 기본이었고, 늘 자신보다 배로 드셨다고 했다.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던 분이었다고 밝혔다. 73년 어느 날. DJ 가족과 아침식사를 했다. “막내아들 홍걸이가 아버지에게 뭐 좀 사달라고 했다. 웃으면서 돈 없다고 사주질 않아 ‘DJ는 돈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또 “장남인 홍일씨도 공군에서 휴가를 나와 함께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4. 해외 단독인터뷰 독차지

DJ가 80년 신군부 세력에 의해 내란음모사건의 배후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DJ 구명운동이 일자 82년 12월 석방됐다. DJ는 곧바로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미국 워싱턴 국제공항에서 DJ와 다시 만났다. 오랜 투옥생활로 인해 머리숱이 빠진 DJ는 그를 보자마자 “다치가와 기자 여기 있었구나”라며 반가움을 표했다고 했다. 당시 DJ는 다치가와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투옥생활에 따른 고초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의지, 인권상황에 대해 밝혔다. 당시 이 기사는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92년 14대 대선에서 낙선한 DJ를 영국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했고, 2000년 12월 DJ가 노벨평화상 수상하러 노르웨이 오슬로에 갔을 때도 함께 했다. 정작,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만나지 못했다. 국정에 바쁜 대통령을 사적으로 만나 인터뷰하는 건 실례로 생각했다. 대신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그는 DJ의 서거 4주기를 맞아 한국에 올 예정이다. 다치가와 부장과 술한잔하면서 다시한번 김 전 대통령의 추억을 떠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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