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은 잘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직업상 안 볼 수가 없다. 사무실 벽에는 7대 TV가 걸려 있다. 여기서 24시간 쏟아내는 종편 뉴스를 매일 보고 있다.
저녁 쯤이면 종편 방송이 '소음'처럼 들려서 머리가 띵하다. 최근 종편의 편파와 선동에 불만을 품은 손상대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라도 종편을 보면 이미 사람의 뇌가 분노 내지 허탈에 빠질 것이고, 이성 또한 마비된다.”
나는 종편 중 특히 각종 전문가 페널들이 출연해서 떠드는 방송은 보지 않는다. 이 쪽 저 쪽 채널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가 거의 똑같다. 패널들의 말투와 말톤, 표정 등까지 비슷하다. 여기에 선동질 처럼 들리는 MC까지 가세되어 있다.
대신 최근 들어 JTBC 뉴스룸을 보았다. 이 방송 뉴스에는 예전 나와 함께 근무했었던 후배기자들이 나온다.
이 방송 뉴스 앵커는 손석희씨다.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전문 뉴스 앵커이자 JTBC 보도 담당 사장이다. 보수 단체에서 손씨의 뉴스 진행이 편파적이라고 불만이 많지만 손씨는 세련되고 깔끔한 말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방송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테블릿 PC 유출 보도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이로 인해 시청률 10%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송을 보면서 내가 점점 세뇌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이 마비 당하고 나의 뇌가 허탈과 분노의 물질을 내뿜는 거 같은 먹먹한 느낌이랄까. 25년 이상 언론 바닥에서 뒹굴어 온 나마저 이러는 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지난 29일자 이 방송 뉴스를 보았다.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박 대통령 사생활 보도와 최순실 사태 의혹 제기다. 현재 적신호가 켜진 경제와 가계부채 등 서민 전반에 대한 뉴스는 아예 없거니와 뒷전이다.
나는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히틀러의 통치기반을 공고히 한 괴멜스의 어록이 떠올랐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이 말은 '위대한 독일제국의 재건'을 목표로 내 건 괴멜스의 대표적인 어록이다.
공산주의 이론을 수립한 칼 마르크스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말했었는데, 지금 대한민국 종편 특히 JTBC 뉴스룸에는 괴멜스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JTBC 뉴스가 이미 탄핵 당했고,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왜 그리 죽이려 하는지 그 보도 행태와 진행에 섬뜩함을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경제 위기는 1300조 가계부채가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 경제는 빨간불이 켜졌다. 이 위기에 언제까지 종편 방송은 박근혜 문제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가.
지난 3개월 간 종편은 모든 뉴스의 초점을 최순실 사태로 몰고갔다. 앞다퉈 촛불 시위를 생중계 했고, 참여를 독려케 했다.
사실 최순실 사태는 박 대통령이 재단 두 개를 만들고 재벌들로부터 800억원 가까이 걷어 최씨에게 맡긴 사건이다.
최씨가 별도로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고, 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임명했다. 최씨는 대통령 연설문을 입맛대로 고치고 국무회의·수석회의 일정을 바꿨다. 최순실 국정 농락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종편은 툭 하면 ‘단독’, ‘특종’ 보도인 양, 대통령이 무슨 주사를 맞았다니, 주름 줄이는 시술을 했다니 등 떠들어댄다.
그것이 국정이나 최순실 사태와 무슨 상관인가.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어디로 가고 없다. 주사제나 미용, 시술과 같은 박 대통령 모욕 주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세월호건만 봐도 그렇다. 박 대통령의 그날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는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처음 보고받았을 때 이미 세월호는 90도 안팎으로 전도돼 있었다.
내부가 복잡한 여객선이 30도 이상 기울어지면 승객들이 탈출하기 어렵다. 세월호 침몰과 희생자 수는 박 대통령의 대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과 희생자 등 모든 잘못을 박 대통령으로 몰아간다. 나는 박 대통령의 문제는 주사나 시술,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가 아니라 본다. ‘무능’ 그 자체다.
최순실 사태의 본질적는 문제는 접어두고 매일 같이 의혹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종편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프레임에 갇히 넘버원 집단이 종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미디어 연구자인 토드 기틀린은 프레임 개념을 원용하여 매스미디어의 보도가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어떤 사건과 현상을 프레임속에 가두어 버리면 결국 그것이 여론화되면서 때론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다.
그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런 과정이 몇차례 숙성을 거치면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국민적 공감과 공분이 함께 축적 된다.
괴멜스의 어록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프레임은 그만큼 무서운 광기의 씨앗이기에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종편 보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법조인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프레임은 사법부 판단과 양심마저 가둔다. 법을 집행하는 판·검사들은 진실보다 국민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판·검사들이 껄꺼러운 것이 ‘국민여론’, ‘국민공분’인 것이다. 국민공분이란 프레임에 갇히면 법의 집행은 법이 아닌 국민여론법이 집행자가 되어버린다.
나는 종편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가치마저 혼란스러울때가 있다.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무엇이냐? 팩트를 보도하기 전에 다양한 팩트를 확보하는 것이다. 보고 들은 대로 전하는 앵무새가 되면 안된다.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서 균형을 잃지 않은 사실을 합리적으로 전하는 것이다.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거나 사실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은 존재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사실을 찾아내 사실과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를 확인하고 재정립하여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저널리즘이다.
지금 최순실 사태를 보도하는 종편들은 인스턴트 뉴스다. 우리나라가 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갈지 방향 제시는 뒷전이다. 대신 카더라~, 의혹 제기, 사실 부풀리기, 한 특정인의 제보를 특종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한쪽 귀는 닫고, 한쪽 눈은 감고 있다. 여기에 편향된 입으로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게 하고, 사건 외곽 때리기나 과도한 자극만 주고 있다. 무개념, 무책임의 극치로만 치닫고 있다.
이런 종편 뉴스 선두 주자가 감히 손석희다. 손씨 머리가 냉정해지고, 가슴은 더 차가워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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