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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유

공지영과 작가의 길 2012년 2월 쯤 공지영 작가는 한 예능프로에 출연했다. 당시 그는 이 방송에서 이혼, 자식관, 인생관 등 자신의 시시콜콜 이야기를 마구 쏟아냈다. 내 시선이 멈춘 곳은 두 군데 말하는 대목에서다. 하나는 “아이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펜을 들었다.”또 하나는 “자신의 꿈은 나이 70이 되어서도 남자친구와 함께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것”이라는데서다. 그가 빨강이든, 노랑이든 스포츠 카 타고 그런 로멘틱을 꿈 꿀 수 있다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학비를 벌기 위해 펜을 들었다”는 내용에선 할 말을 잃었다. 공지영 작가. 그는 우리 시대 베스트 셀러작가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글에 공감하고 또 위로와 만족을 얻는다. 그런 공 작가가 "학비를 벌기위해 글을 적는다"는 표현은 사적인 자리에서나 할 수 있.. 더보기
낭만파 협객 '낙화유수' 김태련 매년 추모식에 전국 주먹들 모여 '형님' 예우 그가 작고한지 어느덧 7년이 흘렀다. 인생은 낙화유수(落花流水)…떨어지는 꽃,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해서 부쳐진 별칭의 주인공. 낭만파 주먹의 마지막 거장. 낙화유수 고 김태련 씨 (1932-2006)다. 7년 전 2006년 11월1일 오전. 김씨의 후계자 조병용씨 전화가 걸려왔다. 조씨는 "정 선생 큰형님께서 쓰려져셔서 국립의료원 중환자실에 계신다"고 알려줬다. 필자는 급히 국립의료원으로 달려갔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쉴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조씨가 말했다. "정 선생 형님이 산소호흡기로 연명하지만 들을 수는 있으니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세요." 필자는 "형님(낙화유수) 정의로운 세상에서 여전히 낙화유수처럼 사십시요"라는 이승에서 마지.. 더보기
잊혀진 계절 김일 선생을 떠올리며 시월의 잊혀진 영웅, 박치기 왕 김일 김일 선생 기념관 입구에 있는 김일 선생 흉상 시월의 마지막 날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흑백 TV가 처음 나왔을때 즈음인 1960년대.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던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아다준 '영웅'이 있었다. 그가 전설의 '박치기 왕' 고 김일 선생(1929-2006)이다. 1960~70년대 반칙을 일삼는 일본의 야비한 레슬러들이나 자이언트 바바와 같은 거구들을 주특기인 박치기로 쓰러뜨리는 장면이 흐릿한 흑백화면에 나오면 모든 국민들은 통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에게 숱한 희망과 감동을 안겨줬던 김일 선생은 2006년 10월 26일 작고했다. 김일 선생이 작고한 날이 공교롭게도 박정희 대통령이 작고한 날이기도 하다.. 더보기
김주하 이혼소송 말 못할 속사정 김주하 이혼소송, 남편 폭력 때문? '충격' 김주하 전 앵커는 왜 이혼소송을 제기했을까. MBC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김주하(40) 전 앵커가 결혼 9년만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자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 김 전 앵커는 직장인이 뽑은 ‘서른 이후 더 멋있어지는 최고의 여성’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유명 앵커 이전에 최고 여성으로도 각광받았던 그의 뜻하지 않은 이혼소식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김 전 앵커는 지난달 서울가정법원에 남편 강모(43)씨를 상대로 이혼 및 양육자 지정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시다 시피, 김 전 앵커는 지난 2004년 외국계 증권사에 근무하던 강씨와 결혼했습니다. 강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 더보기
황혼이혼, 중년의 시한폭탄 "애들 다 키웠으니 헤어지자" 황혼이혼 출처=구글이미지 일본에서는 늙고 무능한 남편을 지칭하는 속어가 있습니다. ‘누레 오치바(젖은 낙엽)’와 ‘소다이 고미(대형 쓰레기)’입니다. 이는 남성 효능을 다해 처치 곤란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가 화를 내더랍니다. 남편이 묻기를 돈이나 행색이 다른 동창에 뒤처져서 그러냐고 하자, 아내 왈 “나만 남편이 살아 있잖아!” 하더랍니다. 웃어 넘기기에는 뭔가 씁쓰레함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황혼 이혼.’ 2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한 중ㆍ장년층 부부의 ‘황혼 이혼’이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황혼 이혼 건수도 신혼 이혼 건수를 처음 앞질렀다고 합니다. 20일 대법원이 발간한 2013년 사법연감에.. 더보기
비극에서 희극으로 이대호 인생유전 오릭스 이대호 황금갈매기로 훨훨 날까 2011년 11월 필자가 방문했던 교세라돔구장 2011년 11월. 일본 오사카 교세라 돔 구장. 이 돔구장은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홈구장이다. 당시 필자는 오릭스 구단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날 오릭스 구단 고위간부들과 만나 일본에 진출한 이대호 성공 가능성 여부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당시 오릭스 관계자들은 한국의 국보급 타자 이승엽과 투수 박찬호까지 모셔왔지만 성적이 시원치 않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대호는 다르지 않겠느냐며 애써 자위했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오릭스 회장은 당시 이승엽과 박찬호를 영입했던 구단 관계자를 문책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싼 돈으로 이승엽·박찬호를 데리고 왔지만 두 사람의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아서 결국 ‘먹튀’라는 인식.. 더보기
삼성가의 유전 '폐암' 이병철 회장 폐암 작고, 이건희 회장 이어 장남 이맹희씨 폐암 “또 폐암이냐?” 지난 17일 추석 연휴 전날입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부친 이맹희 씨가 폐암 수술을 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새삼 삼성가의 폐암 관련설이 분분합니다. 삼성가 장손 이맹희씨 알려진바대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폐암수술을 받았고, 부친 이병철 회장도 폐암 수술 후 그 후유증으로 작고했습니다. 이씨까지 폐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각종 포털 사이트에 “돈으로 잡을 수 없는게 바로 건강이다”라는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 폐암 2기 진단이 나와 12월 10일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안타까운건, 아들 이재현 회장은 비자금 조성·운용 .. 더보기
지지리도 야구복(福) 없었다던 오승환, 마침내 한신 7억엔 러브콜에도 "지금은 시즌중이라" 태연 한신타이거즈 구장 '오승환 7억엔' 일본 스포츠 전문지 산케이스포츠가 17일자 한신타이거즈가 오승환 영입을 위해 7억엔(약 77억원)을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마무리 영입이 시급한 한신이 영입 후보를 오승환 1명으로 최종 압축했고, 영입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7억엔으로 책정했다고 전했다. 7억엔은 2년 전 이대호가 오릭스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받은 총액이다. 오승환은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표현해주는 한신에 대해 "고맙다. 하지만 지금은 시즌이 끝나지 않아 특별한 반응을 보이기는 힘들다"는 반응을 나타낸 바 있다. 이 기사를 보면서 6년전 지지리도 야구복이 없었다며 웃던 그가 생각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부산 동래의 한 호텔에서.. 더보기
시묘살이 끝낸 고 장준하 선생 아들 호권씨 시묘 끝낸 장준하 선생 장남 호권 씨 “부친 묘를 두 번이나 여는 큰 죄 지었으니, 시묘 살이 했습니다” 시묘 끝내는 날 김두한 장남 경민 씨도 장 선생 묘소 찾아 ▲고(故) 장준하 선생의 장남 호권 씨가 유해가 안장된 파주시 장준하공원 내 묘지 묘비 앞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아버님 곁에 더 있고 싶지만 시묘 살이는 오늘(8일)까지만 하고 끝내려 합니다.” 유신독재에 맞서다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1918-1975)의 장례가 치러진 지난달 30일부터 장 선생의 묘소가 있는 파주시 장준하공원에서 시묘 살이를 했던 큰아들 호권 씨(64). 그는 지난 8일 동안 이곳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며 아침·저녁으로 밥과 나물, 국과 술을 묘소에 바쳤다. ‘부모상을 당하면 자식이 무덤 근처에 움집을 짓고 살며 .. 더보기
일본에서 한줌의 재로 변한 한 정보원의 쓸쓸한 죽음 165㎝가 될까 말까한 작달만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눈매가 매서워 만만해 보이지 않는 인상. 바바리 코트 차림에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총총 걸음걸이로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곤 했었다. 일본에서 활동했던 김예호씨다. 김예호씨라면 유명 인사쯤으로 짐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는 보잘 것 없는 80대 중반의 노인이다. 사실 ‘김예호’가 그의 본명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에 대해 알려진 거라곤, 나이는 80대 중반쯤. 일본 동경 긴자에 사무실을 두고, 동경 인근에 살고 있다는 것 뿐이다. 한국에서 고향이 어디인지,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어떤 기관(회사)에서 근무 했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그에게 신상을 물으면 “정 선생, 그냥 ‘동경 김 선생이다’만 알고 계세요.”라고 픽 웃는다. 일본 동경에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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