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와카리마스까”(알겠습니까)
6일 오전 12시 TV로드쇼에서 전격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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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7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명박 대통령.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출생지가 오사카인지는 알지만 오사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했다. JBC -X파일이 이 전 대통령도 잘 모르는 오사카 출생지를 전격 깐다.
이명박 대통령
이 전 대통령의 출생지가 일본 오사카인가, 경북 포항인가.
지난 17대 대선을 앞두고 각종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던 이 전 대통령이 출생과 관련된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네티즌들이 이 전 대통령의 고향이 경북 포항이 아닌 일본 오사카란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대통령 후보 출생지가 논란과 관심을 모았던 것은 한국민의 마음 저 한구석에는 누구나 고향, 나아가 태어난 곳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청와대
더구나 삼국시대에 도입된 이래 이 땅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쳐 온 풍수 사상은 생가를 중요시하지 않던가.
오죽하면 “한국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왕의 기운이 서린 땅에서 태어나 그 기운을 받아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라는 말이 전 국민에게 회자되겠는가.
이 전 대통령의 출생지 논란은 급기야 이 전 대통령의 생모 논란으로까지 번지면서 이 전 대통령은 형 이상득 전 의원 이복동생이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로 인해 2007년 8월 대선을 4개월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와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구강세포를 채취해 유전자(DNA) 검사까지 받아야만 했다.
필자는 당시 이런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 전 후보 출생지가 오사카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격 오사카 현지 취재를 떠났다.
점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
이 전 대통령의 출생지는 大阪市 平野區 加美南 福井戶 3丁目 52番地(오사카시 히라노구 가미미나미 후쿠이도정 3정목 52번지)다.
현재 인구 20만명이 모여사는 히라노(平野)구는 오사카의 대표적 평야 지대다.
이 전 대통령은 1941년 12월 19일 이곳에서 출생했다.
그가 출생할 당시 이곳 주소지는 大阪府 中河內郡 加美村 梅井戶 3丁目 52番地(대판부 중하내군 가미촌 매정호 3정목 52번지).
이 전 대통령 호적에는 위 주소가 출생지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大阪市 平野區 加美南으로 변경되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출생지 번지수를 가리키는 필자
따라서 지난 17대 대선을 앞두고 야당 등 많은 인사들이 이 전 대통령 출생지를 확인하기 위해 오사카를 방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오사카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변경되면서 였다.
더욱이 당시 대선을 앞두고 이 후보 측에서도 출생지 논란이 벌어질 것에 대비, 오사카를 극비 찾았지만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필자가 확인한 결과 이 전 대통령 출생지 주소는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모두 바뀌었다.
오사카시 행정 담당자에 따르면 오사카부는 1950년경부터 행정 구역이 개편돼 이후 32시(市)·10정(町)·1촌(村)으로 되면서 지명이 바뀌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재를 위해 간 히라노구 구청
이 전 대통령 출생지는 우선 오사카부에서 오사카시로 변경됐다.
또 한국의 구(區)에 해당되는 중하내군은 평야구·주길구 등 다섯 개 구로 나뉘어졌다.
주길구 행정 구역의 이또미(여)는 “가미촌 매정호 3정목은 행정 구역상 주길구 관할이 아니다. 평야구 행정구역”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 호적등본을 갖고 확인한 결과 평야구가 이 후보 출생지 관할 구청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본적지와 같은 주소지
이명박 전 대통령 출생지를 확인시켜주는 현재의 주소지
이명박 전 대통령 누나 귀선씨가 필자로 적어 지목한 이 전 대통령의 출생지. 필자가 확인한 출생지와 일치한다.
살아생전 이명박 전 대통령 누나 귀선씨
결국 이 전 대통령 출생지 명칭은 대판부→대판시, 중하내군→평야구, 加美村(가미촌)→加美南(가미남), 梅井戶(매정호)→福井戶(복정호)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적등본 주소지와 동일한 것은 3정목 52번지였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 출생 주소지는 대판시 평야구 가미남 복정호 3정목 52번지다.
이곳은 50여 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고, 목축장으로 유명했다.
일본식 나무집이 많았던 빈민촌으로 산과 강이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 누나가 지목한 이 전대통령 출생지다. 귀선씨가 지목한 곳과 일치한다.
오사카시 법무국 산하 동길주출장소에서 발급받은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후보 출생 마을엔 오사카에서도 제법 유명한, 창업자(이가루가 겐노스케) 이름을 딴 이가루가 우유 공장이 있었다.
이가루가 가츠히꼬란 아들이 지금도 이곳에서 우유 공장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출생지 주소에는 아직도 헐리지 않은 채 남은 2층 일본식 가옥이 있다.
주소지대로라면 이 건물이 이 전 대통령 생가다.
소유주는 우겐노스케.
현재는 일본 오사카부 네야가와(寢屋川)시엔 간서(間西) 지역의 대표적 우유 회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친 이충우씨(1981년 작고, 오른쪽 아래)가 일본에서 생활할 당시 사진.
안겨 있는 아이가 이귀선씨.
이기루가 우유는 게이항(京阪)우유와 연관이 깊다.
이 대통령 부친 이충우씨(1981년 작고)가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추정) 최초로 일했던 곳이가루가 우유공장(현 게이항 우유)이다.
이충우씨가 일본에서 처음 정착했던 곳은 오사카시 스미요시(住吉)구 마쓰다(松田)정 2정목 9번지에 있는 시마다 목장이었다.
1930년 1월 이 대통령의 큰누나 귀선(작고)씨가 바로 이곳에서 출생했다.
그후 시마다목장은 젖소가 250여 마리로 불어나면서 더 넓은 목축장이 필요, 1938년께 히라노(平野)구 가미미나미(加美南) 후쿠이도정(福井戶) 3정목 52번지로 이전했다.
1941년 12월 19일 이 대통령은 이곳에서 출생했다.
게이항 우유 역사를 담은 서적
이 목장 측에 따르면 당시 하나의 건물에 사장과 사원 주택이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둔 채 같이 있었다고 한다.
목장 측은 "이 대통령은 사원 주택에서 출생했다"라고 전했다.
이 대목은 이 전 대통령 친누나 귀선씨가 필자에게 밝힌 “동생(이 대통령)은 시마다목장 사원 주택에서 출생했다”는 말과 일치한다.
이 대통령은 이 사원 주택에서 네 살 때까지 살았다.
또 이 대통령 형들인 상은(큰형)·상득(작은형)씨도 이곳에서 출생했다는 게 귀선씨의 증언이다.
목장 측은 당시 숙소 주소지가 오사카부 나카가와지(中河內)군(현재 히라노구) 나가요시무라(長吉村) 나가하라(長原)인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후쿠이도정과 나가하라 간 거리는 3㎞ 이내여서 이 목장 측 소유지 일 가능성이 높다.
필자와 인터뷰 한 후 악수를 나누는 게이항 우유 대표이사.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출생 연도인 1941년 이 대통령 출생지 사장 가옥에서 태어났다.
시마다목장은 1944년 말 또 한 차례 이전했다.
당시 히라노구에는 군수 공장이 많았다.
시마다목장은 일본의 유명한 군수 공장이었던 하야카와(早川)전기(샤프전자 전신)와는 골목 하나 정도가 떨어져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을 무렵 일본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연합군 폭격을 우려, 민간 업체 대부분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켰다. 이때 시마다목장은 오사카부 북동부에 위치한 네야가와(寢屋川)시로 이전했다.
네야가와로 옮긴 시마다목장은 ㈜ 게이항우유로 이름을 바꿨다.
시마다 목장 일가족들, 앞줄 여학생이 에이코상. 귀선씨는 에이코와 함께 히라노구 가미소학교를 다녔고 2008년 필자가 연결해줘 63년만에 통화를 했다.
이 전 대통령 가족은 네야가와로 이전한 시마다목장과 잠시나마 함께한 것으로 보인다.
시마다목장과 헤어진 시기는 1945년 3월 전으로 추정된다.
시마다목장과 헤어진 이 대통령 가족이 정착한 곳은 나라(奈良) 북쪽 미에켄(三重)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 부모는 1945년 3월 이 대통령 여동생 귀분씨를 이곳에서 낳았다.
귀선씨는 “시마다목장과 헤어진 후 미에켄에서 조금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 가족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귀선씨는 “해방된 뒤 10월쯤 우리 가족은 나고야 부근 한 항구에서 밀항선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라고 밝혔다.
귀선씨는 밀항선을 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정기선을 탈 경우 일본서 벌은 전 재산을 압수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밀항선에 몸을 싣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이 대통령 가족은 부산 인근 쓰시마섬(對馬島) 부근에서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리고 겨우 목숨만 건겼다.
귀선씨는 “대마도 앞바다가 오사카의 모든 추억을 삼켰다”라고 표현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해방된 후 한국으로 돌아오며 정착했던 곳이 경북 포항시 흥해읍 덕성리. 이 일대는 ‘덕실’ 또는 ‘덕곡’으로 불리는 고지산 아래의 마을이다.
고지산을 넘어 안강평야를 바라보면 이 일대에서 가장 높고 우람한 비학산이 펼쳐져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오사카 출생은 슬픔과 고난을 간직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맥을 같이했다.
■이명박 대통령 가족과 게이항 우유 인연사
1929년=이명박 전 대통령 부친 이충우씨 오사카에서 시마다목장과 첫 인연
1930년=큰 누나 귀선씨 시마다목장 사원 주택(오사카시 스미요시구 마쓰다정 2정목)에서 출생
1933~1935년=큰형 상은씨,·작은형 상득씨 시마다목장 사원 주택( 오사카부 나카가와지군 나가요시무라)에서 출생
1941년=이명박 대통령 시마다목장 사원 주택(오사카시 히라노구 가미미나미 후쿠이도정)에서 출생
1944년 말=이충우씨 시마다목장과 함께 네야가와로 이전
1945년 초=시마다목장과 헤어짐
1945년 3월=여동생 귀분씨 출생(오사카 동쪽 미에켄)
1945년 10월=한국행
#팁
필자(앞줄 오른쪽)가 히라마츠 오사카 시장(가운데)과 오사카를 지역구로 둔 일본 국회의원들과 인터뷰한 후 기념촬영
이들은 한일 우호협력을 위해 히라노구에 이명박 전 대통령 출생기념비를 건립키로 했다.
당시 필자가 이 전 대통령 출생지로 특종보도(2007년 12월 8일치)하자 히라노구 가미나미 주민들은 이 전 대통령 기념비를 건립키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당시 일본에서 출생한 외국인 국적자를 상대로 일본인이 자발적으로 기념비 건립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이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시라가미 도시오(白神敏男·72) 가미나미 자치회장은 "우리 동네에서 출생한 분이 한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 꿈만 같고,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과 협심해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시라가미 회장은 이어 "기념비가 건립되면 히라노구 주민들은 큰 자부심을 느낄 것이며, 후세에도 자랑거리로 전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가미나미 주민자치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히라노구 나가하라(長原)동연합회도 적극 동참키로 했다. 이 연합회 나카모토(中本一生) 회장은 "히라노구에서 출생한 분이 한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히라노구 주민 모두의 자랑이다. 가미나미 자치회와 협의, 기념비 건립에 적극 동참키로 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같은 히라노구 주민들의 움직임에 대해 오사카시와 시 의회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오사카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앞장서 기념비 건립에 나선 것은 시민들이 그만큼 이 대통령 취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라고 말했다.
일본 의회도 가세했다. 고이치로 이치무라(市村浩一郞) 중의원은 "히라노구 주민들이 건립하는 기념비는 향후 한국과 일본의 우호 증진에 큰 가교 구실을 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다치 모토유키 참의원은 "일본 의회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마을에 기념비가 건립되는 것을 반기고 있다"라고 전했다.
당시만 해도 한일 관계는 역대 어느정권보다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베정권의 노골적인 보수 우익으로 돌아서면서 한국과 일본이 우호관계는 ‘일장춘몽’으로 끝나 버렸다.
이 전 대통령이 죽기전이라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 생가를 방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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