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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C시선

[단독] 노길남 미스터리 제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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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임당동 출생, 본적이 ‘경남 부산’ 왜?

 

 

종북사이트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LA거주·71)은 누구일까. 지난 2008년 4월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국제적 창녀’로 비유하는 등 미국사회에서 ‘막말 스토커 시위’로 악명이 골수 종북주의자다. 최근 그의 정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핵심은 출생지, 주소지, 본적, 학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동기와 과정, 직업, 그 후 행적 등이 의문투성이라는 것. 그의 정체를 추적한다. <운영자주>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미주한인역사박물관에 올려져 있는 한인 인명록에 따르면 노길남 출생지가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이다.

민족통신 대표인 그는 지난해 11월 민족통신 최재영 편집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일제시기 황해도 해주에서 사시다가 1930년대 강릉으로 거처를 옮겨 강릉 시내 임당동에서 ‘형제양복점’을 운영하시다가 강릉의 외곽동네 초당이라는 곳에 사는 소작농의 딸이었던 어머니와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는 지난해 11월 최근 폐간 논란이 되고 있는 자주민보에 실렸다.

 

#4세때 아버지 작고

노길남 아버지는 그가 네 살이 되던 직전에 작고했다. 1944년 4월 3일생이니, 그가 만 3세때 아버지가 작고했다는 말이다. 노길남은 동생이 둘이다. 여동생과 그 밑으로 남동생이 있었다. 여동생은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전쟁 때라고 밝혔다. 그리고 남동생은 아직 생존해 있다. 노길남은 지난해 10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7년 만에 남동생과 조우했다. 동생은 한국에서 택시와 트럭 운전기사였다.

최근 필자는 노길남이 태어났다는 강릉시 임당동을 갔었다. 그곳에서 여든 이상 노인 6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형제양복점은 기억하는 데 그 가족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들의 기억력을 살리기 위해 “노길남 어머니는 강릉시 초당동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란 후 시집왔다”고 전해줬다. 임당동과 초당동 거리는 약 4km다.

이들은 “엄마가 초당동에서 시집 왔다면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임당동은 강릉 중앙동에 위치해 있어 번화가다. 그러나 당시 임당동은 아주 시골이어서 한 집 건너 누가 무엇을 하고 사는 지 이웃 간에 훤히 꿰뚫고 있었다.

임당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든 셋의 한 노인은 “당시 임당동에는 노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거 같다”고 밝혔다. 한평생 임당동에서 사셨던 여든 이상의 노인들이 그의 가족을 기억 못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 일 게다. 하나는 노길남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가족이 다른 데로 이사를 갔기 때문. 또 하나는 68년 전이라 기억을 못하는 경우다.

그런데 의구심은 노길남 형제 연령이다. 노길남은 “네 살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밑으로는 여동생, 남동생 있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노길남 부모가, 노길남 형제를 연년생으로 낳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연년생 출산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진 조작 의혹

하지만 각종 사진에서 드러난 노길남과 동생의 모습을 비교하면 나이 차이가 적어도 4~5년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통상적으로 아기를 낳기 위해선 10개월 동안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분유를 먹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당시는 모유를 먹였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모유를 먹이면 6개월간 생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 임신 후 아기 출산까지는 14개월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노길남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작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병이 있었다면 엄마가 아기를 갖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

또 다른 의구심이 있다. 노길남 가족사진이다. 사진이 오래되어 훼손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노길남 어머니 머리 위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운 흔적이 있다. 노길남 어머니와 동생 사진 왼쪽(사진을 정면으로 봤을 때)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노길남 사진에는 그림자가 없다.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면 노길남 사진에도 그림자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하지 않는가. 따라서 합성일 가능성이 높다.

#본적지 경남 부산

본적지도 의문투성이다. 노길남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 해주. 강릉 임당동에서 살았다. 어머니 고향은 초당동이다(본인 증언). 노길남 주소지는 다를 수야 있겠지만, 본적지만은 임당동 혹은 아버지가 작고했다면 초당동 일 것으로 짐작된다.

구호적법상 호적은 시 ·구 ·읍 ·면의 구역 내에 본적을 정하는 자에 대하여 호주가 기준이 된다. 이 말은 노길남이 출생했고, 살았던 곳이 본적지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길남 본적이 ‘경남 부산’이다. 그의 본적이 ‘경남 부산’으로 드러난 것은 연세대학교가 발급해 준 학생증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 노길남 본적은 ‘경남 부산시 양정동 73번지다.’ 주소지는 ‘서울 성동구 XXX 188번지다.’ 강릉시 임당동 출신에, 서울에서 살았던 그의 본적이 어떻게 해서 ‘경남 부산’이 되었을까. 한 가지 추정 가능한 것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을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본적지를 변경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작고한 상태여서 피난을 갔다면 엄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 피난통에서 어머니 혼자서 본적지를 이전시킬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의 본적지가 왜 하필이면 경남이면 경남이고, 부산이면 부산이지, ‘경남 부산’일까. 같은 경상도라지만 제 2도시 부산은 행정구역상 경남과 엄연히 다르다.

부산은 19963년 1월 1일부로 부산시에서 부산직할시로 승격됐다. 그 전에는 ‘경남 부산’ 이 아닌 부산시로 표기되었다.

이외에도 노길남은 까면 깔수록 그의 정체가 의심스러워 진다. 노길남은 연세대 64학번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의 학생증은 그가 63학번으로 기재되어 있다. <다음호에는 학생증의 비밀편이 이어집니다.>

 

노길남 미스터리를 까고 있는 JBC 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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