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좌파요?”
JBC까 방송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 대해 약간 옹호를 한다든지, 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작은 쓴소리라도 하면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구지 않듯, 이런 댓글에 주눅들어 까야 할 것을 못까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이런 식의 댓글을 보면서 사람들은 보수가 뭔지 알까.
또 진보는? 그렇다면 우파와 좌파에 대해 알고 그런 말을 하는 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나만의 우파와 좌파를 구분하는 방식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이분법이다.
“김정은 개새끼 말해봐”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우파’다, 아닌 사람은 ‘좌파’로 규정한다. 또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거나 촛불혁명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좌파’이고, 이에 반하는 사람은 ‘우파’로 선을 긋는다.
사실 나는 내가 이런 식으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한다고 하지만 한편으론 떨떠름하다. 좌파와 우파를 규정짓는 아주 복잡다단한 방식과 정치와 사회를 바라 보는 관점, 역사적 인식, 철학적 형태 등 다양함을 뒤로하고 이렇게 구분짓는 게 분명 한국사회에서만 가능할 법 하다. 미국 및 서구사회에선 택도 없는 구분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좌파와 우파를 규정짓도록 한 것은 남북 분단도 한 원인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하기 전만 해도 한국 사회는 이토록 이분법적으로 좌우를 구분짓지 않았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그 배후에는 문재인 정권의 촛불이 있었다는 사실과 이들이 북한과 연계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은 좌경화 클릭 상태이고, 점점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 그러니 좌우 구분짓는 이런식의 이분법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식의 이분법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이데올로기의 뒤에 옹크리고 있는 현실로서의 문재인 정권 좌파 본성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 있다.
나는 문재인 정권의 좌파주의 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북한 김정은 집단 밑에 완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공산주의를 보았고, 민노총, 전교조 등의 좌파 단체들의 분노에 찬 데모를 목격할때마다 문 정권이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를 읽었다. 이를 보면 20대 대학 시절 데모 현장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주사파들의 슬로건이 떠올려진다.
그런데 이 좌파들이 살아온 모습을 30년 넘게 가까이서 지켜본 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일상에서 현실의 모습은 참으로 찾기 어렵다. 이들의 삶은 이상의 영역에서만 눈부실 뿐, 30년 이들의 과거는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하면서 살아온 무모한 삶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말로는 늘 민중을 위한다였지만 이 민중이 국가를 지배하고 주인노릇을 할 수 없다는 그 평범한 사실을 끝까지 부정하면서 혁명을 꿈꾸고 있다. 이들이 만들고 싶어하고, 살고자 하는 세상은 모순이상으로 가득차 있다.
“김정은 개새끼”라고 말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파냐 우파냐로 구분짓는 것도 우습지만, 실은 세상은 ‘선’과 ‘악’, ‘영성’과 ‘세속’, ‘순수’와 ‘불순’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세상은 개인의 취미와 성향적인 '호불호' 경계는 정해져 있지만 이념과 사상의 호불호에서 경계를 지을 경우 결국 논리에서 패배자가 될 뿐 아니라 동굴에 갇힌다.
이것은 말빨이 좋은 사람이 이긴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다. 그 논리의 외형성은 침묵하는 대중을 깨울 수 있고, 또 이끌 수 있는 힘이다.이분법만으로는 그것을 할 수가 없다.
현재 우파의 비극은 우파의 본질적 가치와 보수지향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있다. 우파가 젊은층으로 접근 하지 못하는 것도 우파의 논리적 우격다짐이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보수 꼰대론이 그 연장선상이다.
뭉매한 우파는 정의로운 척 하는 좌파를 만들어 낸다. 이런 거짓 좌파는 결국 우파의 무능함을 먹고 자란다.
사회는 대립과 갈등속에 얽혀 있다. 우파는 그 대립과 갈등을 너 편, 내 편으로 갈라 세우고 있다. 이 쪽 저 쪽 줄서기를 통해 편을 가른다. ‘우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 우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좌파는 그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고, 어떻게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논하고 있다. 이 논의 속에 ‘합’을 이끌어 내어 이것을 이론화 시킨다. 설령, 그 이론이 같잖은 내용과 속임수로 가득하다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좌파는 거짓말로 망한다’는 것은 역사의 관점에서 볼때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좌파는 너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 좌파의 거짓말은 대의에서 비롯된다. 공산주의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라면 작은 거짓말은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큰 정의를 위해 작은 정의는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다.
흔히 정당화와 비정당화가 있지만 좌파의 거짓말은 정당화로 굳어져 있는 게 정설이다. 거짓말을 정당화 하는 상황 논리가 윤리와 도적적 원칙의 차원이 되면 이는 문제가 된다. 이것은 대의를 위한 거짓말, 선의를 위한 거짓말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특히 정권을 잡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은 심각하다. 국민을 속이고 사기 치는 행위다. 정작 희안한 것은 권력집단의 거짓말은 진실이 되고, 국민들은 그것이 사기이고 자신을 속이는 줄 모른다. 좌파는 이런 것에 현혹당하고 쉽게 믿는다. 반면, 우파는 속지 않는다. 접근과 상종 조차 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의 진보를 위한 거짓말은 괜찮다”고 주장한다. 이는 진보를 위해 인간이 사기와 거짓의 희생양이 되어도 괜찮다는 역설이다.
좌파의 가치관이 이런 거짓과 트릭에 잡혀 있는데도, 우파는 매순간 옳고 그르고, 맞고 틀렸고의 이분법에 갇혀 있다. 늘 새로운 판단과 결단을 요청하는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고, “내가 옳고, 넌 틀려”라는 이분법 사고에 안주한 것이 아닌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영웅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진 듯 착각에 살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기독교적 애수의 삶을 살고 실천하고, 마치 자신이 거룩한 성인전의 주인공 인 거처럼 착각하는 게 아닌가.
문재인 정권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미투의 가해자들이다. 이중성, 정의로운 척, 진실인 척, 마치 마초 같은 스타일로 포장해서 국민을 현혹시킨다.
사람들은 이런 좌파의 허물에 대해 ‘설마’ 혹은 ‘그 정도는 괜찮아’하고 눈감는다. 그러나 이것은 너그러움이 아닌 그만큼 이론적 자기 정당화로 무장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속는 것이다. 좌파가 더 깊이 타락한 권력의 추태를 보여주는 것은 사회 총체의 당연함일 수 있다.
자기 정당화가 자기 성찰을 가리기 시작한 순간 바로 정치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을 보니 딱 그렇다.
우파는 좌파 보다 더 악랄해야 하고 지독해야 한다. 오직 이분법적으로만 규정지으면 안되는 까닭이다. 우파의 논쟁은 미래여야 한다. 과거에 머무는 순간, 저들의 사악함에 육체와 정신이 썩어들어간다.
지금 좌파는 낡은 상상력으로 사회를 속이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은 보수의 힘이다. “김정은 개새끼”를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파냐 우파냐를 구분짓는 거 자체가 낡은 것이다. 개새끼는 이미 개새끼가 된 상태다. 미래에도 개새끼다. 한번 개새끼는 영원한 개새끼가 아닌가. 변하지 않을 그 개새끼를 통해 좌우로 가르마 타는 것이 역겹지 않는가. .
우파는 그 개새끼 이분법 논리에 빠져서 좌우 가르마를 탈 때가 아니다. 이런 이분적 논리로 좌파VS우파 구도는 벗어던져야 한다.
보수주의는 이분법이 아니다. 보수주의는 사회정신의 상태이며 문명사회 질서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다. 보수적 시각은 매우 많은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를 포용해야 한다. 총체적 사회이론을 흡수해야 한다.
독일의 종교학자 에릭 푀겔린은 “근대 정치학의 거대한 경계선은 그 한쪽에 자유주의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 전체주의자들이 있는데 그런 구획을 나누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한쪽에는 도덕적 질서와 인간의 본질, 종교적인 질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소홀히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
이쯤되면 나의 역설이다. 나에게 “당신 좌파요?”라는 꼬투리식 공격을 함부로 하지 마라.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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