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사람을 만나기 전, 그 사람 '성향'부터 확인 하는 버릇이 생겼다.
“우파냐?” “좌파냐?”
사실 사람을 상대로 이런 확인 절차를 거치는 거부터가 짜증난다. 좌든, 우든 나는 상관없는데, 자꾸 내 의식은 이런 것을 확인해 봐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게 정상인가.
내 머릿속의 '우파'와 내 의식 속의 '좌파'는 분명 다르게 해석된다.
폴란드 희곡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희곡 '계약'에는 “나는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지만, 서쪽에서 보면 동쪽에서 왔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좌파에서 우파를 보면 우파이고, 우파에서 좌파를 보면 좌파 아닌가. 좌우 구분이 아주 단순하다.
그런데도 인간의 이념 지도를 억지로 그리는 거 같다. 이런 우매한 그림이 또 다른 우매한 그림을 그리듯,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자체만으로 나를 점점 우매함 속으로 빨려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우매함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보고. 또 문재인 좌파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또 태극기 집회에서 대한민국의 순수한 사람들의 외침을 보면서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보수 우파가 탄압받고,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또 문재인 좌파 정권의 위선과 기만, 대국민 쇼와 사기 치는 것을 보고 또 보면서 였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됐고, 그렇다면 이에 대해 분노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세상은 정반대다. 문재인의 지지도는 늘 70%대다.
특히 지난 27일 문재인-김정은 판문점 합의문은 비핵화에 한해선 대국민 사기다. 그런데도 일부 보수인사들까지 이 합의에 대해 환영했다.
분명해 지고 있는 것이 있다. 문재인-김정은 판문점 만남 이후 정통 보수 우파가 설 땅을 점점 잃고 있다. 좌파들의 체계적 반항들이 정통 대한민국의 질서를 허물어뜨린다. 여기에 '닥치고 문재인' 지지 세력도 거들었다.
어찌되었던 좌파가 우파에 '카운트 펀치'를 한 방 날렸다. 이 좌파들의 펀치는 그동안 국가주의 속에 안락함을 고집했던 우파의 오만과 편견에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도 우파는 여전히 잘못된 길의 환상과 헛심에 사로잡혀 있다.
우파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정치적 ‘호불호’나 ‘좌’냐 ‘우’냐 이념적 취향만 따진다. 좌파가 우파의 적이라는 오직 그 이분법 뿐이다.
더욱이 우파는 오직 선의로 포장되어 있는 길만 가고자 한다. 이는 어쩜 우파의 노골적인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호불호 앞에서 우파의 다양하고 탄력적인 사고를 주장하는 것이 감히 먹혀들 수 있을까.
행여 우파의 오판과 편견을 지적 했을 경우 이런 비난이 뒤따를 거다.“저 자는, 분명 위장된 우파다.” “좌파다” 등.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25년 1월 동아일보에 발표한 ‘낭객의 신년만필’이라는 글을 적었다.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는 것이다. 우파의 투쟁은 대한민국을 위하는 듯 하지만 실은 대한민국을 위하는 것인지 애매하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방식과 대안은 없는 듯 하다. 오직, 쌓인 분노와 증오심이 대한민국 우파의 역설로 읽힌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우파에게 있어서 이성과 도덕의 합리성과 대동단결이 등이 상실되었다. 우파는 사소한 것에 흥분하고 비극적 대립과 분열을 자초하고 있다.
우파들의 SNS에는 온통 ‘선동’과 ‘자극’만이 판친다. 부정확한 선동과 자극이 정확한 증거의 상위에 있다. 지식으로 얻어진 논리, 행동으로 얻어진 방향은 뒷전이다. 목소리가 크고 무대포 댕강이 이를 압도한다. 가짜들이 말하는 것은 진짜 사실보다 더 정확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이를 나무라거나 비판하지 못한다. 사실과 어긋남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비판이 두려워 입을 닫는다.
우파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문재인과 그 좌파들을 향한 분노가 모두의 가슴속에 '트라우마' 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트라우마를 극복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갇혀버린다. 이를 극복해야만 이길수 있는 평범한 답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감정이 거듭될수록, 과장된 감정을 낳고, 그 감정은 독선과 아집으로 승화된다. 지금 딱 우파가 그렇다.
우파의 입과 귀는 열렸을까. 지금 대한민국 우파들에겐 분노와 증오만 있다. 분통 터지는 문제 제기만 있다. 태극기 집회 투쟁방식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해 오든 투쟁 방식 리바이벌이다.
여기 저기 집회 연단에서 사자후를 토해내는 연사들의 연설도 비슷하다. 새롭고 신선한 게 없다. 참석하는 사람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새로운 사람은 어느 집회로 갈지 방황한다. 폐쇄주의가 싹트고 있다. 어느새 교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자리 잡았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우파는 그 변화를 싫어하는 지, 외면하는 지 모르겠지만 그저 기존 방식에 길들여 졌고, 익숙되어만 간다. 이것은 변화에 대처 못하는 우파의 오만과 고집과 편견, 아집의 전형이다.
문재인 정권 좌파들은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변화를 시도중이다. 그 변화를 통해 어떤 식의 진지를 구축하고, 그 때마도 전혀 딴판의 전략과 전술이 나온다. 우파들은 좌파들의 전략과 전술이 마침내 대한민국의 완전한 좌경화와 이후 연방제로 치다를 것으로 알면서도 옛 것만 고집한다.
변화와 호기심보다 익숙한 것에 대한 편안함에 더 안주하게 된다는 우파의 특성으로만 해석해야만 하는가.
좌파는 이런 우파의 생리를 훤히 꿰뚫고 있다. 우파의 한계와 문제점도 너무 잘 안다. 문재인 정권의 우파 다루기는 자극이다. 분노를 증오심을 더욱 부추긴다. 우파는 그대로 말려든다.
문재인의 우파 무시와 외면은 일상에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좌파들에겐 교묘히 이를 이용한다. 좌파의 정신과 일상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굴종'과 '복중'하게 만들고 있다. 일상 생활의 미세한 국면에 까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대한민국을 지배할 것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추상적 사고와는 달리 우리의 일상을 이미 지배하고 말았다. 이것이 어느새 생활 양식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의 좌파주의는 물밑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의 그 좌파적 독재가 대한민국 자유 지형을 잠식 하고 흔들었다.
문재인 좌파 독재가 지지 받고 기반을 확장 하는데는 바로 변화를 통한 대중속에 파고듦이다. 문재인 정권의 좌파주의는 시퍼렇게 살아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수 우파의 이성적 논리가 문재인식 좌파주의 침투에 무기력 하게 무너졌다. 이렇듯, 대한민국 보수 우파를 질식할 듯한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데도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는 것은 뒷전이다.
어찌보면 문재인 좌파 정권의 지형은 바뀐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파가 그 지형을 잘못 읽은 측면도 있다.
그 밑에는 허황된 기대와 안일함도 거들었다. 북한 김정은 집단은 핵 폐기를 못한다는 당위에 천착함으로써 미국이 한방 때려줄 것이라는 기대.
고로, 미국이 문재인 정권까지 없애줄 것이란 헛된 기대가 있었다. 사실 이런 기대는 위태로운 것이다. 이 기대로 빠진 순간, 우파의 전략은 제로 상태가 된다. 이는 바람이 불어서 나무에 매달린 감이 떨어지길 바라는 요행이다.
사회주의로 치닫는 문재인 정권이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문재인 정권 분노와 증오에만 갇혀 있을 것인가. 우파 투쟁의 핵심은 박근혜 탄핵 무효와 석방 뿐인가.
이것이 바뀌지 않고 일종의 우파의 신념으로만 자리잡고 있는다면 문재인 좌파정권을 향한 우파의 역습은 무의미 하다.
미국의 사상가 러셀 커크는 자신의 저서 '보수의 정신'에서 보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보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일고 있는 김정은 신드롬을 단순히 이데올리기로 치부할 수 없지 않는가.
이념은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때론 눈멀게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통은 이데올로기 보다 높고 고귀하다.
어찌보면 싸움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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