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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C시선

손석희-손혜원, 신의 저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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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한 장면. 위 기사와 무관함

신이 “있다”, “없다”는 논쟁을 펼치자는 것이 아니다. 최근 잇따라 터진 양 손(손석희-손혜원) 사건을 보면서 “신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우파쪽 사람들의 지탄과 비판을 받아도 눈썹하나 까닥 않던 두 사람이 우연찮은 일로 걸려든 것을 보니 말이다.  

양 손 사건은 손석희 스캔들 의혹, 손혜원 부동산 투기로 제기된 게이트 의혹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양 손 사건을 너무나 잘 알기에 굳이 따로 떼어내서 설명하지 않겠다.

둘의 공통점은 뭘까. ‘내로남불’은 이미 식상이다. 여기에 ‘배째라식’, ‘오리발식’, ‘물귀신식’. 한 손이, 또 한 손을 따라하는지, 아님 그 손이, 이 손을 모방하는지 알 수 없다. 어쩜 사건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도 그렇게 비슷한지 놀랄 따름이다.

순진한 사람들은 이들의 이런 대응에 혀를 내두를 수 있다. 그러나 좌파 대가리 속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양 손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따름이다. 양 손은 좌파의 속성을 철저히 이용하는 듯 하다.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폐단은 ‘극단’이다. 촛불로 집권한 '뭉가'가 그렇게 더 만들어 버렸다.

이 극단의 이분법 사회는 그 특징이 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다. ‘내가 맞고, 너가 틀렸다’, ‘난 선, 넌 악 이다'로 나누어 졌다.

우리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선택 할때는 이성에 바탕을 둔 상식과 때론 법과 지식의 범주에서 결정되어지곤 했다.

'뭉가'가 들어선 이후 우리 사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상식과 지식이 붕괴 되어 버렸다. 법치도 사라졌다. 오직 '이념' 따라서 옳고 그름이 구분될 뿐이다.

양 손 사건은 분명 국민적 분노와 실망,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양 손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이고 법치적이다. 그런데 좌파들의 생각은 다른 거 같다. 오히려 양 손이 피해자다.  

양 손 같은 자들을 흔히, ‘강남좌파’라 부른다. 강남좌파는 대한민국 사회의 진보적 이념,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을 지닌 고학력, 고소득 계층을 지칭한다. 한마디로 자기 모순적 행태가 많은 인간들이다.

실제로는 넉넉하고 편안하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말로는 사회정의를 외치는 이른바 부자 좌파들이다.

프랑스식 표현으로, 고급 요리인 캐비아(철갑상어 알)를 즐겨 먹으면서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이중적 좌파를 빗댄 말이다. 미국에서는 리무진 리버럴, 독일에서는 살롱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

신개념의 전문직이고, 정치인인, 양 손이 이에 해당되는 듯 하다. 의식과 물질이 따로 노는 이 같은 자들은 가진 자의 위선이나 허위의식의 전형이다.

이런 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은 아주 교활할 정도로 이념을 좌우 이분법으로 잘 나눈다. 양 손은 사건이 터지지 말자, 자신들을 지지 해온 좌파들을 향해 ‘진실과 정의는 승리한다’ 는 메시지를 날려 보냈다.

이들의 항변을 듣는 골빈 좌파들은 양 손이 전문 지식인이요, 정치인이데 설마 사건에 연루됐을까 의구심을 품고 부정한다.

가령, 양 손이 눈 앞에서 빵을 훔쳐서 발각 되었을지언정, 이들이 배고픈 자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훔쳤다니, 혹은 수구 보수 언론의 모함에 걸려 들었다는 식으로 오도할 것이다.

좌파의 의식속엔 상식과 법리가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인간에겐 이런 윤리와 도덕성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있다. 이성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1724-1804)가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존재는 이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태어날 때부터 지식을 갖고 있으며, 경험의 역할은 이성이 본래부터 갖고 있던 지식을 일깨우는 데 머무른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이성은 양심이다. 흔히들 비도덕 양심자를 가리켜 양심에 펑크난 자라고 한다.

양심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이것을 저버린 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고 한다.

양심은 영어로 Gewissen다. '함께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 어의 συνείδησις, 라틴 어의 conscientia의 독일어 번역이다. 따라서 양심(Gewissen)은 '함께'라는 요소와 '안다'라는 요소에서 성립한다.

양심은 우선 자신의 행위가 도덕적인 의무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것은 첫째로는 그것을 자기와 '함께', 둘째로는 타자와 '함께', 셋째로는 절대자와 '함께' 아는 것이다. 이 절대는 신을 의미할 것이다. 철학자 헤겔은 “양심은 개개인의 도덕적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양 손은 분명히 양심의 이론에서 한 참 벗어나 있다. 양 손은 상식과 이성과 법도 피해 갈 것이다. 예전에 법보다 주먹이 먼저일 때가 있었다. 이들을 주먹으로 한 방 날릴 수도 없다. 뭉가하에서 죄와 벌은 무의미 하다.

내가 굳이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은 양심론에서 ‘절대자 즉, 신은 안다’는 대목이다. 신은 이들을 처벌할 수 있을까. 어느날, 이들의 사건이 터진 것은 신의 단죄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뭉가하에선 양 손에 죄와 벌을 쥐어주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 뭉가를 아웃시키고, 새로운 우파 정부가 들어서야만 가능하다.

사람이 짓는 善惡(선악)의 인업에 응하여 과보가 있다. 행한 대로 업에 대한 대가를 받는 일. 좋은 因緣(인연)에는 좋은 과보가 오고 악한 인연에는 악한 과보가 온다. 곧 因(인)과 果(과)가 서로 응한다. 이것인 인과응보(因果應報)다.

한 손이 스캔들로 몰리든, 또 한 손이 게이트로 확전 되든 솔직히 관심 밖이다. 내가 진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양 손이 박근혜 대통령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이 죄가 더 크다. 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따라다니는 불변의 죄다. 양 손 중 누가 더 그 죄가 크냐면, 바로 손석희다.  

그가 박 대통령을 얼마나 처참히 죽였는가. 선동으로 국민을 속이고, 저주해왔다. 여기에 뭉가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죄 없는 자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많은 국민을 속인 이들이 무사할까. ‘인과응보’와 ‘신이 있다’는 것은 연관성이 없지만 실은 두 의미의 조합은 깊은 연관상이다.

그래서 양 손 사건을 보면서 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통령을 저주했던 이들이 그 저주의 늪에 갇혔다. 양 손이 벌은 받지 않았지만 이 얼마나 멋진 인과응보의 출발인가.

신이 이들과 함께 어두운 달을 지게 할 경우 내일 당장 “신이 있다”고 찬양 할 것이다.

오늘도 기도한다. '심판의 그날'이 반드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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