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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C 까

말종 정권, 말종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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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의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국민들이 분노해야 할 곳은 조국 사건에 대한 일회성 분노가 아닌, 한국사회 전반의 제도개혁 요구를 위한 분노이고 혁신이어야 한다."

또 홍 전 대표는 “조국 딸에 대한 분노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좌불안석인 여야 정치인도 참 많을 것이다. 기득권 집착에는 여야가 없고 청부, 졸부가 따로 놀지 않는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는 "한국사회 기득권층, 특권층 자제들의 신분 세습 수단을 어디 조국 딸만 이용했겠나"라며 "잘못된 제도를 이용해 병역회피를 하는 사람이 어디 조국 아들만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이 글에 대해 반박했지만 내심 찜찜했다. JBC까 커뮤니티에 “홍 전 대표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왜 하필, 이 시점에 전선을 확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느냐며 쏘우 부쳤다. 지금은 조국 한명만 열나게 패야 해도 지명 철회 시킬까 말까라서 그랬다.

홍 전 대표의 주장대로, 대한민국 기득권, 특권층 중 자제들의 신분세습은 물론 기득권 집착하는 자는 조국만 있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이들의 가족과 부의 축적 과정 등 전수 조사를 하면 모두가 조국같은 그 이중성이 드러날 것이다.

스티븐슨이 1886년에 발간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Dr.Jekyll and Mr. Hyde). 이 책은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지녔다는 것을 콕 짚은 것이다.

이 책은 나는 도덕 윤리적으로 우월하고, 깨끗하고, 나는 정의이고, 진실의 편에 서서 늘 행동 한다는 우월주의에 빠지지 마라는 충고다.

인간의 일면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가지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악행을 행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그린 게 이 책이다.

인간은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누구나 이러한 이중성을 품고 산다. 누구나 선행을 할 수도 있고, 악행을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이중성은 한국인만의 전유가 아니다. 지난 2010년 6월 미국 언론은 전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와 그의 아내 티퍼 고어가 파경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잉꼬부부로 화제를 뿌렸지만 이들 부부의 대변인은 이혼 사유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언급하지 않았다.

훗날 드러났지만 부부 싸움 중 아내 티퍼가 "나는 지구온난화 같은 것은 믿지 않아"라고 말했다. 이에 엘 고어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미국에서 거부이자 명문가 출신인 엘 고어는 친환경운동을 역설해왔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중적 위선은 얼마가지 않아 드러났다. 테네시 정책연구센터는 엘 고어가 아내와 둘이 사는 저택에 20개의 방과 8개의 화장실이 있으며 월평균 전기료는 130만원(일반 가정의 20배)에 달해 환경적으로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미국에서는 엘 고어처럼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공감하는 사람을 두고 '블리딩 하트 리버럴'(Bleeding Heart Liberal·동정심이 과도한 민주당 지지자)이라고 비꼬곤 한다.

이른바 한국에선 조국 형 인간이다. 그는 기고·강연 및 출판,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통해 ‘정의’, ‘평등’, ‘공정’, ‘균등’, ‘약자가 대접 받는 사회’, ‘사람 사는 세상’을 피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조국과 관련한 각종 의혹과 비리는 그의 이중성과 위선을 적나 라게 보여주고 있다. ‘조로남불’ ‘조유라’ ‘조국캐슬’ 등 조국을 향한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는 조국만의 민낯 이전에 한국 좌파들의 이중성이다. 한국 좌파들은 조국의 철저한 이중성과 대중 기만, 그리고 소름이 돋을 정도의 뻔뻔함을 쏙 빼닯았다.

강남에 혹은 부산 해운대에 아파트가 몇 채 있든, 애가 외고를 나와서 편법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진학해도 괘념할 것 없다. “과거를 뒤돌아 보겠다”며 고개 숙이면 양심적 좌파로 보일지 모른다.

요즘 좌파의 큰 미덕은 좌파끼리 절대 비판하지 않는 무조건적 연대의식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야당이 조국 법부무 장관 후보자에 대해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는 데 대해 "가짜뉴스 청문회이자 파렴치한 정치 공세"라고 했다. "가족 신상을 털어 나쁜 여론을 조성해 (조 후보자를) 낙마시키려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청문회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가짜뉴스 청문회 △공안몰이 청문회 △가족 신상털기 청문회 △정쟁 청문회를 막겠다고 했다.

그는 야당이 제기하는 조 후보자 관련 의혹을 '가짜뉴스'라면서 "검증 대상이 아닌 가족까지 들춰내는 지독한 인권침해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얼치기 좌파 전위대로 설치던 연예인들은 입을 닫고 있다. 김규리처럼 ‘청산가리 먹겠다’는 연예인이 안 보인다. 떠버리 김미화, 김재동, 유시민은 묵언 수행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좌파로 살기는 참 쉽다. 어떤 잘못이 있어도 문책은 커녕 감싸주기 바쁜 온정적 사람 사는 세상이다. 고개만 숙이고, 주군에게만 충성 맹세하고, 반일을 외쳐주고, 북한 김정은만 받들어 무셔주면 모든 과오는 용서된다.

문제는 인간이 죄를 지으면 죄의식이 있다. 이들은 죄를 짓고, 변칙과 편법, 반칙을 저지르고도 잘못했다는 의식조차 없다.

김태승 인하대 교수가 쓴 논문 ‘노무현 정부의 386 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386 정치인’들은 기존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의 반민주적 집권 과정과 도덕적 부패,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가졌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및 계몽 활동을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평가받는 인물들의 스캔들이 불거지면 일각에서는 정의롭고 명예롭다고 알려진 성경 속 인물 다윗이 왕이 된 후 자신의 신하의 부인인 밧세바(Bathsheba)를 탐하고 그 일을 무마하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을 죽인 ‘밧세바 신드롬’에 대해 말한다.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집단적 도덕성’을 입증 받았다고 믿는 386정치인들은 제도권 정치와 기존 사회질서를 불신한다.

이들이 집권에 성공하자 정권의 정당성과 전승 파티의 해방감에 취해 권력 남용, 도덕적 해이에 쉽게 빠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나는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이념적 투사야. 나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대변하고 소외 받는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어’와 같은 식의 의미 부여다.

자기 최면을 통해 자신이 조직과 공동체 내에서 저지르는 악행들을 소소한 일탈, 또는 자기 보상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혁명적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 정도 비리 쯤은 괜찮다는 의식이다. 여기에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쉬운 이유는 바로 부의 달콤한 열매다. 가장 사회주의적인 척 하는 인간이 가장 자본주의가 된 것이다.

소련에선 스탈린 집권 이후 왕년의 혁명가들은 공산당과 국가요직을 차지하면서 지배층으로 변신했다. 이들이 노멘클라투라(소련공산당 관료)다.

만민전을 쓴 나연준 씨는 “인민에게 해방, 혁명, 평등을 외치면서도, 정작 지들끼리는 캐비어를 먹으며 프랑스제 명품을 두르고 호의호식했다. 주둥이는 공산주의지만 몸뚱이는 봉건귀족, 공산주의 내로남불의 원조쯤 되시겠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온 돼지들이 바로 이들이다”고 밝혔다.

1980년대 운동 경력을 팔아 출세에 성공한 586세대 좌파들이 한국형 노멘클라투라의 핵심이다는 게 나 씨의 주장이다. 정부와 민초총, 전교조, 각종 시민단체와 좌파 언론사 간부, 자칭 진보적 학계 중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불당의 주장대로, 이들은 조국이 공격을 당했으니 ‘우리가 반드시 복수하자’는 것이다. 나 씨는 “이분법과 피해의식, 그리고 복수심. 이것이 86세대 기본 정서라고 본다. 그리고 이 정서는 역사의식으로 전이된다”고 밝혔다. 자신이 경험한 군사정권과 학생운동의 가해-피해 관계를 한국근현대사 전체로 비약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친일, 독재, 기업은 항상 가해자이고 항일, 민주화, 노동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역사관에 기반하여 자신을 피해자로 정체화시키고, 피해자의 한풀이를 자신의 역사적 소명으로 삼는다. 이게 한국형 노멘클라투라가 갖고 있는 역사의식의 골자이다.

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들이 너무나 위대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중이기 때문에, 개인의 내로남불은 아무 문제도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에 대한 비판은 위대한 과업을 방해하는 음모쯤으로 취급한다.

사실 인간의 이중성을 컨트롤 하는 기능이 윤리와 도덕 철학이다. 인간이 항상 선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항상 선행을 할 것이고, 반성을 해볼 행위는 없을 것이다. 이럴 때에는 윤리와 도덕 등은 필요 없다.

반대로 인간이 항상 악한 존재로 가정하면, 윤리와 도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필요 없는 짓인지 모른다.

그래도 교육을 통한 ‘인간개조’를 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겠지만 괜한 헛수고라고 본다. 윤리가 존재하더라도 인간을 개선, 변화시킬 여지가 없다. 윤리가 악한 행위를 개조 변화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윤리는 인간의 성향이 이중적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악한 모습을 극복하면서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한다.

인간에겐 이런 윤리와 도덕성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있다. 이성이다. 철학자 칸트가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존재로 본 근거는 이성에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적 본질은 현실 삶에서 언제나 그 자체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인간은 자연적 본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자연적 본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개인의 이기심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성과 상식이 무너지고, 판단과 인간적 가치 기준이 무너진 인간을 흔히 ‘인간 말종’이라 부른다. 조직이 이렇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말종 조직’이다.

말종인간과 그런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다. 윤리와 상식은 당연히 없다. 아주 독선적이고 독재적이고 무례하고 건방지고, 폭력적이다.

그 누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것은 ‘프레임에 빠진 인간’의 전형이다.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사회구조 속에서만, 자기의 인격성 즉,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성적·도덕적 존재임은 인정하지만, 이성적·도덕적 존재의 '현실화'는 바람직한 사회구조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미 말종사회가 되었다. 대통령 사기 탄핵, 대통령 구속 등은 마녀사냥의 전형이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 이성과 상식 법치가 무너지고, 헌법이 유린 된 것이다.

정작 큰 문제는 공산주의 사상을 떠받치고 있는 한국사회다. 자신들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하는 좌파들의 정의의 비정의성, 도덕의 비도덕성, 진실의 거짓적 행위 등이 우위로 자리 잡았다.

이런 문재인식 공산주의는 사회구조와 경제체제 법과 제도, 정치 제도와 사회 운동 등의 다양한 현상들이 혼합되어 옭아매고 있다. 좌파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김정은 공산주의는 더욱 포장되어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현혹한 쇼에 사람들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에도 적이 있고, 적 안에도 우리가 있는, 또한 적의 적도 적일 수 있다는 그 판단이 흐려지고 있다.

이를 말종들이 주도하고 그로 잉태된 또 다른 말종들이 지지한다. 민중을 위한다는 것은 실천 논리를 펼치는 자들이다. 본인들의 삶은 부르조아적 삶을 살고 있는 이른바 ‘민중 가면론’자들이다.

이것은 전통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이 경계하는 ‘반동적 행위’자들이다. 이것은 실존 철학 삶에서 결국 이중 삶 이중 인격. 이렇게 사는 자들은 자신을 포장하고 속이기에 결국 상식을 무너뜨리고 법치 파괴를 자행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돌연변이 말종자들. 그 어떤 이념 가치 철학을 들이대어도 이미 상식을 무너뜨린 말종자들의 광기 사회. 우리는 분명 이 잔혹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말종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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