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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이석기', 강종헌 정체<제1탄>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도 인연 ------ 새누리당이 6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除名) 요구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했다. 이석기는 재판에서 내란 음모 혐의로 금고 이상형이 확정되거나 국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제명안이 가결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석기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복역한 강종헌씨가 비례대표 후보 의원 자리를 이어받게 돼 있다. 강종헌이 누구인가. 그는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핵심인물이다. 이 사건은 1975년 대학생 16명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기소된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북한의 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입국해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당시 재일동포로 서울대 .. 더보기
김대중 전 대통령 동경 납치 전모 DJ “납치때 부산사람이 풀어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DJ). 김 전대통령은 2009년 8월18일 작고했다. 4년이 흘렀다. DJ가 작고하기 전 마지막 만난 기자가 누굴까. 뜻밖에도 일본 외신기자였다. 다치가와 마사키 일본 일간현대 전 외신부장(66)이었다. 다치가와 부장은 2009년 6월12일 서울 동교동에서 DJ를 만났다. DJ는 이 자리에서 1973년 8월 일본 도쿄납치 사건을 비롯 자신의 정치역정에 대해 밝혔다. 그로부터 70일이 지난 8월 18일 DJ는 서거했다. 다치가와 부장은 이승에서 DJ와 마지막 인터뷰한 외신기자로 기록됐다. DJ는 다치가와 부장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겼을까. 다치가와 부장 취재수첩에 고스란히 적힌 DJ의 이승 마지막 인터뷰를 옮겼다. 오른쪽이 다치가와 전 외신부장 1.사망.. 더보기
도둑 조세형 기사 다시는 적고 싶지 않다 “ 조세형 TV에 나온 거 봤는지” 지인 한명이 대뜸 조세형이 TV에 출연한 거 봤는지 물었다. 그 지인은 90년대 말부터 조세형 재판과 근황에 대해 취재를 했었고, 2004년 5월 그의 강북구 자택에서 단독인터뷰까지 한 인연을 알고 있기에 혹시 아는가 해서 물었던 것이다. “난 보지 못했는데 조세형씨가 왜 나왔지” “조세형이 비구니였던 전처와 함께 출연했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무리 방송이 소재 거리에 허덕인다고 해도 조세형과 비구니 전처까지 출연시키다니 순간 ‘정말 이건 아닌데’란 생각이 들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조세형 인권 보호와 그의 석방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기사를 수없이 내보냈다. 그의 공판이 있는 날이면 법정에 맨날 출석했다. 왜냐면 그는 좀도둑이 아니었다. 큰 도둑 소위, '대도'였.. 더보기
10년전 청송교도소에서 만났던 김태촌 지난 5일 작고한 주먹계 대부 김태촌씨. 취재 수첩을 뒤적이다 보니 10년 전 청송교도소에 수감중이었던 김씨를 국내 언론 최초로 단독 인터뷰 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당시 청송교도소에는 김씨가 큰형님으로 모셨던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씨(2009년 7월 작고)도 동행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대면했던 김씨가 절규하듯 외쳤던 말이 기억납니다. “난 권력의 희생양이다” 그는 자신이 왜 권력의 희생양인지 소상히 밝히지 않고 눈을 감았습니다. 10년 전 청송교도소에서 김씨를 인터뷰 한 것 자체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시 김씨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김태촌. 그는 조직폭력의 대명사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대한민국 최고의 깡패" "주먹계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그가 이끌던 서방파는 양은이파·O.. 더보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그립다 일본 하토야마 전 총리 지난 2009년 8월 31일 54년 만에 일본 자민당 정권을 붕괴시키고 정권교체를 이룬 후 총리에 올랐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65). 그와 대면 인터뷰는 하지 않았지만 친분 관계로 두 번 봤었다. 한 번은 2009년 6월이었다. “야당 당수가 되면 제일 먼저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하토야마 전 총리는 그해 5월 중순 야당 대표가 된 직후 첫 번째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두 번째는 2009년 10월초였다. “총리로 취임하면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던 그는 약속대로 한국이 첫 방문지였다. 일본 역대 총리중 하토야마 전 총리처럼 한국을 좋아했고,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 해주는 정치지도자가 드물었다. 그가 불쑥 생각나는 것은 지난 16일 치러진 선거에.. 더보기
김오랑! 그를 기억해야 한다 육사 생도 시절 김오랑 중령 ▲아내, 어머니 삼촌도 비명…일가족 '풍비박산' 12월13일 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 김오랑 중령이다. 누굴까.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것 같은데 한국 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시면 “아! 그 분”하고 떠올릴 것이다. 지난 8년전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의 고향인 경남 김해는 물론, 양산, 부산 영도까지 백방으로 취재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김 중령은 1944년생이다. 고향은 경남 김해. 육사 25기. 육군대학교 수석 졸업.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육사 동기생중 선두주자였던 그가 79년 12월13일 새벽 신군부가 난사한 M16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가운데가 김오랑 중령 그가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어떤 인생이 됐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경.. 더보기
역도산 복부에 칼 꽂은 그 야쿠자를 아시나요 30대 후반 역도산 모습 1963년 12월8일 일본 도쿄 아카사카 뉴라틴쿼터 나이트클럽. 건장한 체구의 한 남자가 화장실 입구에서 야쿠자 조직원과 시비가 붙었다. 그 남자는 야쿠자 조직원이 건방지다며 뺨을 한대 때렸다. 그러자 야쿠자 조직원은 숨겨놓은 칼로 그 남자의 복부에 칼을 꽂았다. 피로 범벅이 된 배를 움켜쥔 채 쓰러지는 남자. 그가 바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역도산(力道山)’이다. 이날 상처를 입은 역도산은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12월15일 역도산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당시 역도산을 칼로 찌른 야쿠자 조직원은 야마구치조(山口組)와 함께 당시 일본 밤의 무대를 주름잡았던 스미요시가이(住吉會) 소속의 스물네 살 무라타 가쓰시(村田勝志)였다. 그는 .. 더보기
인육을 먹었던 유영철 팬카페 아직도 개설 말세다 자백 순간 온몸에 전율 "유영철은 악마다" 지난 2004년 7월 말 서울 영등포서의 한 유치장. 어둠 속에 두 남자가 마주했습니다. 연쇄살인마 유영철과 그를 수사했던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장 강대원 경정이었습니다. "26명을 죽였다. 시체는 토막냈다. 인육도 먹었다. 시신은 봉은사 뒷자락에 묻었다." 사형이 선고된 유영철 자백순간 유영철은 악마였다 강대장이 연쇄살인마 유영철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순간이었습니다. 강 대장은 "수사관도 한 인간이었기에 유치장에서 이 같은 자백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인간이 저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구나, 그 다음부터 그가 '악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생각하며 당장 두들겨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꾹 참아야만 했었다. 그러나 .. 더보기
한국의 악마들 대공개 흉악 살인범 김길태 검거 이후 한국의 역대 연쇄살인 및 미성년자 성폭행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김길태와 같이 인면수심의 살인을 저질러 국민적인 분노를 샀던 유영철·정남규·정성현·강호순·조두순. 이들의 범행 동기는 비뚤어진 보복심리와 사회적 분노, 묻지마 살인충동 등 다양하다는 측면에서 김길태와 비교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넘버 1악마 유영철 지난해 세계적인 연쇄살인범 30인에 이름을 올린 '묻지마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사형이 확정돼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숩니다. 유영철은 2003년 전주교도소 출소 후 살인을 시작해 2004년까지 서울 각지에서 부유층 노인과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21명을 잔인하게 살해했으며, 같은해 7월 체포돼 이듬해 6월 사형을 확정받.. 더보기
MB누나 이귀선씨를 기리며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2007년 12월 18일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에서 이귀선씨(81)를 만났습니다. 이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누나 입니다. 지난 29일 작고했습니다. 이씨를 만난 것은 이 대통령의 성장배경과 지난 인생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씨는 일본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오사카 히라노구 한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일제 강점기 시절 오사카는 가난했던 우리 가족에게 희망의 땅이었지만 한편으론 조선인의 차별과 한이 서려 있었던 곳"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씨는 당시 동생인 이 당선자가 오사카에서 출생했다는 사실도 증언해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시절을 밝혔던 이귀선씨 이씨는 이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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